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회의에서 카리브해 마약 밀매업자들에 대한 미군의 지상작전이 "매우 임박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베네수엘라 본토 침공을 언급한 것이다.
미 해군이 지난 9월 2일 카리브해에서 '마약운반선'으로 규정해 격침한 베네수엘라 국적 선박의 생존자 2명을 2차 공격으로 살해한 것을 두고 적법성 논란과 국내외 비판이 커지는 와중에 오히려 지상군 투입을 시사하면서 카리브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지상 작전 대상"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내각회의에서 "마약 운반선들을 잇달아 격침한 덕분에 미국에서 마약 오남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줄었다"면서 "우리는 이런 공습을 지상에서도 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상에서 하는 게 훨씬 쉽다"면서 "우리는 마약 밀매자이 이용하는 경로를 알고 있다"며 지상 작전 의지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상작전 언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추수감사절 저녁에도 미군을 향한 연설에서 "이제 해상에서는 거의 85%를 막아냈다"며 "우리는 이제 곧 지상에서도 그들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9월부터 미국으로의 마약 밀매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보내는 등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고 카리브해와 동태평양에서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들을 공격해왔다. 지금까지 최소 20차례가 넘는 해상 폭격작전으로 선상에 있던 83명이 살해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이 지상 공습의 의미를 재차 묻자 "콜롬비아가 코카인을 만든다고 들었다. 그들은 코카인 제조공장이 있고 우리한테 코카인을 판다"면서 "누구든 그런 일을 하고 우리한테 마약을 판다면 공격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뿐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사람도 그렇게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하면 향후 미군이 베네수엘라나 콜롬비아 내에서 활동하는 마약 카르텔 요인이나 마약 제조시설을 직접 타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베네수 선박 2차공격' 적법성 논란…美국방 "생존자 있는 줄 몰랐다" 책임 부인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 해군이 지난 9월 2일 카리브해에서 '마약운반선'으로 규정해 격침한 베네수엘라 국적 선박의 생존자 2명을 2차 공격으로 살해한 것을 두고 적법성 논란과 함께 의회의 압박과 국내외 비판이 커지는 와중에서 나왔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은 당시 베네수엘라 선박 탑승자 전원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차 공격 이후 탑승자 2명이 생존했는데, 헤그세스 장관 지시에 따라 해당 작전을 지휘한 프랭크 브래들리 해군 제독이 2차 공격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헤그세스 장관은 취재진에 "난 생존자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첫 공격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며 "민감한 장소 정보 수집이 디지털로 이뤄지는 한두 시간 동안 자리에 머물지 않고 다음 회의로 이동했다"고 했다. 2차 공격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몇 시간 후였다고 항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차 공격에 대해선 몰랐다. 그 사람들(생존자)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몰랐다"며 "난 관여하지 않았다. 그들이 배를 제거했다는 건 알았다"며 헤그세스 장관을 거들었다.
마두로, 군사적 압박 美향해 "평화로운 노예 거부"
베네수엘라, '전쟁범죄 美고발' 준비착수…국회특위 구성
베네수엘라를 향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는 것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두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는 미 언론 보도도 나오기도 했다.
이러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은 자국 국민을 상대로 항전 태세를 고취하는 연설을 하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1일 집권당 지역 지도부 취임 행사에 참석해 지지자를 향해 "베네수엘라는 평화로운 노예로 지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우리가 원하는 건 주권, 평등, 자유가 보장된 평화"라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좌파 세력의 정치 지도자였던 우고 차베스를 언급하면서 "차베스 사령관 유해 앞에서 맹세한 것처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국민에 절대적인 충성을 다할 것"이라며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킬 일은 없을 것이다. 결코, 결코, 결코"라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국회는 미군의 마약운반선 생존자 사살 의혹을 사실상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책임 규명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이날 카리브해 일대에서 발생한 '중대한 초법적 민간인 처형' 관련 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베네수엘라 국회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이 결정은 피해자 유족과의 면담을 거쳐 내려졌다"며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미군은 지난 9월 2일 카리브해 일대에서 발생한 사건을 통해 불법적인 방식으로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강조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헤그세스 장관의 '전원 사살' 명령 의혹을 문제 삼으며, 이를 제네바 협약 위반이자 국제법 위반 사례라고 비판했다.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을 인도적으로 대우하지 않은 사실상의 전쟁범죄라는 게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의 주장이다.
美상원, 트럼프 베네수 지상작전 시사에 '전쟁중단 표결' 예고
한편, 미 상원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개시를 막기 위해 초당적 행동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팀 케인(버지니아), 척 슈머(뉴욕), 애덤 시프(캘리포니아) 상원의원과 공화당 소속 랜드 폴(켄터키) 상원의원은 2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 즉시 '전쟁권 결의안'을 제출해 의회 표결을 강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의회 승인 없는 군사 행동은 미군의 생명을 불필요하게 위협하는 거대하고 값비싼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권 결의안 표결은 대통령의 군사 행동을 막는 의회의 강력한 견제 장치다. 1973년 제정된 전쟁권법에 따라 의회는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해외에서 적대 행위에 미군을 투입하면 해당 결의안을 통해 철수를 명령할 수 있다.
이 결의안은 상임위원회 심사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바로 상정되는 '특권 결의안'이어서 모든 의원이 군사 개입에 대한 찬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는 행정부에 상당한 정치적 압박을 가해 군사 행동을 중단시키거나 확전을 막는 효과가 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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