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미식의 도시,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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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미식의 도시, 비엔나

더 네이버 2025-12-03 11:29:56 신고

비엔나의 중심부인 링슈트라세 풍경. ©WienTourismus/Christian Stemper

오페라의 본고장,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도시,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 등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를 기억하는 키워드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미식 도시라는 수식어는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부터 현대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수도로 기능하며 문화 중심지의 지위를 유지한 도시인 만큼 귀한 식재료가 모여들고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며 식문화 역시 발전했다. 프렌치, 이탈리안 퀴진같이 나라나 문화권의 이름을 따라 지역 식문화를 이르는 것과 달리, 비엔나 퀴진(Viennese Cuisine)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시 이름을 붙였다. 단풍 색이 짙어지는 가을날, 미식을 주제로 비엔나를 탐방했다. 길거리 음식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아우르고, 로컬 농장과 와이너리의 땅을 밟았다. 비엔나 대표 음식으로 슈니첼만 떠올렸다면, 이제 새로운 리스트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을 것이다. 

1 ‘머리부터 꼬리까지’ 철학을 실천하는 가스트하우스 슈테른. ©WienTourismus/Gabriel Hyden 2 비엔나 거리의 소시지 가판대. ©WienTourismus/Paul Bauer

비엔나 식문화의 중심

비엔나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점은 아늑한 커피숍과 삼삼오오 길에 서서 소시지를 먹는 가판대다. 이곳의 커피하우스와 소시지 스탠드 문화는 각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유서 깊다. 카페 숫자라면 서울도 뒤지지 않지만, 비엔나의 커피 문화는 사뭇 다르다. 단순히 커피를 맛보는 장소가 아니라 ‘두 번째 거실’이라 할 만큼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체로 공간이 넓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이 같은 카페 문화는 18세기경 태동한 뒤 20세기 많은 작가와 예술가의 사랑을 받으며 무르익었다. 또 다른 만남의 장소는 바로 소시지 스탠드다. 비엔나 내에만 100개 넘는 점포가 있는데, 성대한 공연이나 파티가 끝나면 비엔나 사람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어김없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소시지 스탠드 ‘도장 깨기’를 개인적 미션으로 삼은 이날의 가이드 안나는 약 50곳의 소시지 스탠드를 방문한 전문가다. 그는 클래식 소시지에 홀스래디시 머스터드 소스를 곁들일 것을 추천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비엔나를 대표하는 음식은 슈니첼 아닐까. 독일, 헝가리 등 인근 국가에서도 보편적인 메뉴지만, 비엔나식 ‘비너 슈니첼’에 대한 오스트리아인의 자부심은 상상 이상이다. 그 애정을 비엔나박물관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기(Meat)>는 비엔나의 육식 문화를 조명하는 특별전이다. 육류 소비의 역사를 연대기순으로 소개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식문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에서도 슈니첼은 당당히 한 파트를 차지한다. 비엔나식 슈니첼은 송아지 고기만 사용하며 종잇장처럼 아주 얇게 펴서 튀기는 것이 특징이다. 두께가 얇고 고르며, 튀김옷이 방울방울 부풀어 올라야 맛있는 슈니첼이라고. 질 좋은 소고기에 밀가루와 달걀물, 빵가루를 입혀 튀기는 조리법 때문인지 직관적으로 육전의 맛이 연상됐다. 하지만 정석대로 레몬즙을 뿌리고 감자 샐러드와 크랜베리 소스를 곁들이니 한결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요리로 거듭났다.

1 유명 커피하우스인 카페 첸트랄 내부. ©WienTourismus/Christian Stemper 2 슈타이레렉의 시그너처 디시 ‘차르’. ©Heinz Reitbauer_Restaurant Steirereck 

미식의 현주소를 묻는다면

로컬 미식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레스토랑도 방문했다. 먼저 비엔나의 중심지인 링슈트라세에서 한참 벗어난 레스토랑 가스트하우스 슈테른(Gasthaus Stern)은 옛 여관을 개조한 정감 가는 음식점이다. 왁자하게 저녁 식사를 즐기는 현지인만큼 놀라운 것은 벽에 장식된 동물의 머리뼈였다. 이곳은 ‘머리부터 꼬리까지(Nose to Tail)’ 철학으로 비엔나의 일상 요리를 선보이는 이른바 ‘특수부위 전문’ 레스토랑이다. 공장식 축산 육류는 일절 사용하지 않으며, 셰프가 직접 사냥하거나 소규모 농장에서 구한 재료로 요리한다. 사슴, 토끼, 알파인 염소, 꿩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육류가 메뉴에 가득했다. 여기에 각종 내장과 뇌, 고환 등의 부위까지 사용한다고 하니 되레 도전 정신이 샘솟았다. 소간을 오징어 모양으로 튀긴 칼라마리, 가리비 껍데기에 플레이팅한 소 고환 튀김 등 요리에 재치가 넘친다.
편안한 로컬 음식을 맛봤다면, 기교와 실험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파인다이닝을 경험할 차례. 2025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33위이자 비엔나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두 곳 중 하나인 슈타이레렉을 방문했다. <미쉐린 가이드 비엔나&잘츠부르크>판이 발간된 2010년 이래 줄곧 2스타를 유지하던 슈타이레렉은 오스트리아 전국 가이드로 재편된 2025년, 고대하던 3스타를 차지했다. 부모의 레스토랑을 이어받은 오너 셰프 하인츠 라이트바우어(Heinz Reitbauer)와 그의 아내이자 경영자인 비르기트(Birgit)가 함께 운영한다. 
비엔나 시립공원 안, 풍경을 비추는 메탈로 둘러싸인 건물에 들어서면 프로페셔널한 직원들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를 안내한다. 단풍이 짙게 물든 이날은 런치 코스와 오스트리아 와인으로 구성한 주류 페어링을 경험했다. 가장 먼저 놀란 요소는 식전빵 트롤리였다. 로컬 베이커리의 빵으로 구성한 트롤리에는 그윽한 풍미의 사워도우부터 따끈한 블러드 소시지빵까지 맛보고 싶은 빵이 가득했다. 
아뮈즈부슈에 이어 시그너처 디시 차르(Char)가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마리아첼산 민물 생선인 곤들매기에 뜨거운 밀랍을 부어 익힌 요리로, 삶거나 찐 생선과 달리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 적당한 탄성을 지닌 식감이 감탄을 자아냈다. 이 밖에 뉴욕에서 개발한 배저 플레임 품종의 골드 비트 디시, 구운 양배추를 곁들인 보덴 호수 장어구이 등 오스트리아 작물과 생선을 활용한 요리가 이어졌다. 

자급자족을 꿈꾸다

비엔나를 거닐다 보면 크고 작은 공원을 자꾸만 만난다. 놀랍게도 면적의 50%가 녹지라서다. 곳곳에 공원도 많거니와, 농장과 와이너리의 비중도 크다. 유통 구조가 복잡한 서울에서는 대부분 소매 상점에서 식재료를 구입한다. 하지만 비엔나에서는 생산자와 직거래, 나아가 자급자족을 상상할 수 있었다. 
먼저 비엔나 남쪽의 구구무크(Gugumuck) 농장은 안드레아스 구구무크 대표가 운영하는 달팽이 농장이다. 그는 넓은 밭에서 식용 달팽이를 재배해 음식점에 공급하고, 에스카르고를 선보이는 전용 비스트로도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달팽이뿐 아니라 다양한 채소도 재배해 판매한다. 더불어 부지 한쪽에 민물 생선과 달팽이를 함께 양식하는 아쿠아포닉 시설을 건축할 예정이다. 마침 농장 인근의 로트노이지틀 구역에는 농업과 도시 생활을 결합하는 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구구무크 대표는 도시 농장이 완성되면 비엔나는 자급자족 ‘천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확신에서 미래 도시의 희망을 발견했다.
구구무크가 비엔나 외곽이라면, 아우가르텐 도시 농장은 비엔나 2구의 공원 내에 자리한다. 2011년 출범한 비영리 단체가 운영하며, 시민이 자급자족을 실천할 수 있도록 농사 방법을 교육한다. 밭 입구에 설치한 수직형 화분은 작은 공간에도 조성 가능한 매력적인 솔루션이었다. 겨울을 앞둔 텃밭은 휑했지만, 채소가 단맛을 품는 계절이라는 운영자의 설명에 절로 채소 요리를 떠올렸다. 아우가르텐 공원에서는 시민이 텃밭을 분양받아 직접 작물을 기를 수도, 농장의 채소를 구매할 수도 있다.

 비엔나 외곽의 포도원 풍경. ©WienTourismus/Mafalda Rakoš

도시의 와인 산지

국가의 수도로는 유일하게 비엔나에는 와이너리와 포도밭이 존재한다. 도시 외곽 높은 지대에 포도원이 모여 있는데, 그중 비엔나 와인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와이너리 비닝거(Wieninger)를 찾았다. 와이너리를 설립한 프리츠 비닝거는 비엔나 와인의 퀄리티를 높여 인식을 바꿔놓은 와인메이커다. 그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아마도르가 위치한 하이스찬 노이만(Hajszan Neumann) 와이너리의 소유주로서, 아마도르와 파트너십 관계를 맺고 있다. 
프리츠 비닝거의 안내에 따라 와이너리 내부를 돌아보았다. 화이트와인을 저장하는 스테인리스 배럴과 옛 교회 지하실을 개조한 셀러도 확인했다. 그리고 찾아온 시음 시간. 먼저 비엔나 특산 와인인 게미슈터 자츠로 시작했다. 한 포도밭에서 재배한 3가지 이상의 품종을 한꺼번에 발효한 화이트와인이다. 산뜻한 산미와 청량함을 갖춘 데다 가격이 저렴해 일상적으로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가장 인상적인 와인은 ‘샤르도네 그랜드 셀렉트 2022’였다. 샤르도네 원액을 뉴 오크 배럴과 사용한 프렌치 오크 배럴에 나눠 숙성한 뒤 다시 블렌딩한 와인이다. 핵과류와 시트러스 향이 드러나며 은은한 오크 향과 산미가 기분 좋은 긴장을 유지했다. 
비엔나의 로컬 음식과 와인을 경험하니, 이곳의 미식은 도시의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선구자의 노력에서 피어났음을 깨달았다. 분명한 사실은 비엔나의 미식 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리고 아직 그 진가를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취재 협조 비엔나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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