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치킨 시장에 처음으로 중량 표시 제도가 도입된다. 가격은 그대로 두고 중량만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반복되자 정부가 외식 분야에도 소비자 보호 장치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의 불투명한 정보 구조를 개선하고, 소비자가 단위가격 변동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첫 제도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2일 공정거래위원회·식품의약품안전처·농림축산식품부·기획재정부·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식품분야 용량꼼수 대응방안'을 내놓으며 치킨 중량 표시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시행 시점은 12월 15일이며 전국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 10개 브랜드의 가맹점 약 1만2000여 곳이 대상이다.
최근 몇 년간 치킨 가격이 2만 원을 넘기면서 소비자 불만이 급증했다. 특히 메뉴 가격은 그대로인데 중량을 줄이는 방식의 사실상 가격 인상 사례가 반복돼 논란이 커졌다. 대표적으로 교촌치킨이 닭 부위를 조정해 중량을 줄인 뒤 가격 변동은 최소화한 사례가 지적되며 국정감사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가 가격 대비 가치(가성비)를 판단할 최소한의 정보가 부족하다"며 개선을 요구했고, 결국 정부가 외식업계에 처음으로 구체적인 표시 기준을 적용하게 됐다.
새 제도는 BHC, BBQ, 교촌치킨, 굽네치킨, 처갓집양념치킨, 네네치킨, 페리카나, 멕시카나치킨, 지코바, 호식이두마리치킨 등 대형 프랜차이즈가 의무 대상이다.
매장 메뉴판에는 가격과 함께 닭고기 조리 전 총중량을 g 단위로 표기해야 한다. 한 마리 단위 제품처럼 중량 편차가 발생하는 메뉴는 '10호(951~1050g)' 형태로 호(號) 표기 방식을 허용한다. 배달앱·홈페이지 등 온라인 주문 페이지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중량을 표기해야 한다.
정부는 6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두고, 위반 시 즉각적인 처벌 대신 '올바른 표시 기준' 안내에 집중한다. 다만 내년 7월부터는 시정 명령 → 반복 위반 시 영업정지로 이어지는 강한 처벌을 예고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중량 정보를 명확히 공개함으로써 사실상 가격 인상 행위를 소비자가 직접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정부는 "콤보 순살치킨 중량이 650g → 550g으로 줄었고 g당 가격이 인상됐다"와 같은 방식의 안내를 프랜차이즈 본사에 적극 권고했다.
다만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닌 자율 규제 형태로 남겨졌다.
정부는 "외식업 특성상 메뉴 변경 과정이 다양해 법으로 일률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신 소비자단체가 참여하는 감시 체계를 강화해 시장 스스로 투명성을 높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소비자단체협의회가 5대 브랜드 치킨을 정기적·표본 구매해 실제 중량·가격·변동 내역을 공개하도록 예산을 지원한다.
또한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직접 제보할 수 있는 '용량 꼼수 제보센터'도 운영한다. SNS나 홈페이지를 통해 중량 미표시·허위표시 등 의심 사례가 접수되면 공정위와 식약처가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치킨뿐 아니라 가공식품 시장에도 규제가 강화된다. 한국소비자원이 19개 제조사·8개 유통사 정보를 기반으로 중량 5% 이상 감소 → 단위가격 인상 여부 → 최소 3개월 고지 여부를 지속 모니터링한다.
현재는 위반 시 식약처가 시정 명령을 내리는 수준이지만, 내년부터는 '품목 제조정지 명령'이 가능해진다. 제조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해당 제품 생산은 일정 기간 중단된다. 이는 캔 음료, 과자, 유제품 등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주요 가공식품에서 중량을 줄이는 방식의 가격 인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단순한 단속 강화를 넘어 외식업 전반의 가격 투명성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상당수가 영세 자영업자라는 점을 고려해 계도 기간을 두고 지나친 부담을 피했다"며 "이번 제도가 업계 전반의 인식 개선과 자율 규제 확산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일부 우려도 나온다. 메뉴 리뉴얼 과정에서 원재료와 중량이 동시에 바뀌는 경우 소비자가 '정상 제품 교체인지, 사실상 인상인지'를 판단하기 어렵고, 법적 기준과 소비자 인식 사이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비프랜차이즈 매장이나 소규모 치킨집은 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출발점'으로 평가하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보다 넓은 범위의 정보공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