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가족 내 희생양이 되는 아이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형제자매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가족 내 희생양이 되는 아이들

나만아는상담소 2025-12-02 11:10:00 신고

한 핏줄의 타인, 혹은 가장 가까운 적. 형제자매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에 대하여

식탁이라는 이름의 재판정

저녁 식사 시간,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 사이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평범한 가정에서 식탁은 하루의 피로를 나누는 쉼터여야 한다. 하지만 당신의 집에서 식탁은 매일 밤 피고인이 되어 심판대에 오르는 법정과 같다.

판사는 부모이고, 검사는 당신의 형제(혹은 자매)다. 그리고 당신은 영문도 모른 채 죄수복을 입고 앉아 있다.

“너 오늘 표정이 왜 그래? 또 회사에서 깨졌니?” 형제가 툭 던진 이 한마디는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약점을 찾아내어 부모에게 고자질하기 위한 신호탄이다. 곧이어 부모의 혀를 차는 소리와 비난이 쏟아진다. “너는 언제 철들래.” 형제는 그 옆에서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거든다. “엄마, 쟤는 원래 좀 예민하잖아. 우리가 이해하자.”

이 기막힌 협공(Double Team) 앞에서 당신은 질식할 것 같다. 세상에서 내 편이어야 할 가족이, 나를 가장 잘 아는 형제가, 나의 등 뒤에 칼을 꽂는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다. 당신은 그 집에서 철저히 고립된 섬이다.

부모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자녀들은 필연적으로 갈라진다. 한 명은 부모의 사랑(사실은 투사된 자아)을 독차지하는 ‘골든 차일드(Golden Child)’가 되고, 다른 한 명은 가족의 모든 수치심과 문제를 뒤집어쓰는 ‘희생양(Scapegoat)’이 된다.

당신의 형제자매가 나르시시스트라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그 희생양의 배역을 맡았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잔혹한 배역이었다.

왕자와 거지, 혹은 공주와 하녀의 연극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개체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녀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분류한다. 자신을 빛내줄 우월한 분신, 그리고 자신의 찌꺼기를 받아낼 배설구.

당신의 형제는 전자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부모의 욕망을 가장 잘 파악하고, 비위를 맞추며, 부모와 심리적으로 융합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부모의 총애를 받는 대신, 부모의 나르시시즘을 그대로 학습했다. 그는 부모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배웠다. ‘아, 쟤는 무시해도 되는 존재구나. 쟤를 밟고 올라서면 내가 칭찬받는구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라. 당신이 장난감을 양보하지 않으면 ‘욕심쟁이’가 되었지만, 형제가 뺏어가면 ‘적극적인 아이’가 되었다. 당신의 실수는 ‘구제불능’이었지만, 형제의 실수는 ‘귀여운 해프닝’이었다.

이 불공정한 게임 속에서 형제는 당신을 경쟁자가 아닌 먹잇감으로 인식한다. 그는 당신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한다. 그는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고 당신에게 ‘작은 부모’ 행세를 한다. 잔소리를 하고, 지시를 내리고, 당신의 사생활을 감시해 부모에게 보고한다.

이것은 형제애가 아니다. 이것은 권력 투쟁이다. 그는 부모라는 절대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콩고물을 얻어먹는 간신이고, 당신은 그들이 합작하여 괴롭히는 충신이다. 피를 나눴다는 사실이 이토록 끔찍한 족쇄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날으는 원숭이(Flying Monkeys)가 된 형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는 서쪽 마녀의 명령을 받고 도로시를 괴롭히는 날개 달린 원숭이들이 나온다.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스트의 조력자들을 ‘플라잉 몽키’라고 부른다. 당신의 형제는 부모의 가장 충실한 원숭이다.

당신이 부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거리를 두려 할 때, 가장 먼저 연락해 오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형제다. “야, 엄마가 너 때문에 앓아누웠어. 자식이 돼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아빠 늙으신 거 안 보여? 네가 좀 굽히고 들어와.”

그들은 ‘중재자’인 척하지만, 실상은 부모의 대리인으로서 당신에게 죄책감을 주입하러 온 것이다. 그들은 부모의 학대 사실을 철저히 부정한다.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래.”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이 가스라이팅은 부모가 하는 것보다 더 아프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밥을 먹으며, 그 집안의 공기를 공유했던 형제마저 내 고통을 부정할 때, 당신은 자신의 현실 감각을 의심하게 된다.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다. 당신은 정상이다. 다만 형제는 그 학대의 시스템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에,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이다. 당신이 탈출하면 그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왜 당신이 희생양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왜 하필 당신인가. 형제보다 못나서? 공부를 못해서? 천만에. 정반대다.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아이는 대개 가족 중에서 가장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거나, 도덕적 기준이 높거나, 거짓을 참지 못하는 ‘진실을 말하는 자(Truth Teller)’일 확률이 높다.

당신은 부모의 모순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부모가 연기하는 화목한 가정의 뒷면에 숨겨진 차가운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당신의 그 투명한 눈빛이 부모와 나르시시스트 형제에게는 두려움이었다. 자신들의 거짓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신을 ‘문제아’로 만들어야 했다. 당신의 입을 막고, 당신의 정당성을 훼손시켜야만 자신들의 가짜 왕국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 집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신만이 그 집에서 유일하게 제정신 박힌 인간이었다는 증거다.

건강한 사과는 썩은 사과 상자 안에서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와야 한다. 그들은 당신을 쫓아내려 했지만, 사실은 당신이 그 썩은 상자에서 탈출할 기회를 준 셈이다.

골든 차일드의 비극적인 말로

당신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형제가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그가 누리는 지원과 칭찬이 샘났을 것이다. 하지만 질투를 거두어도 좋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골든 차일드야말로 가장 비극적인 인형이다.

희생양인 당신은 부모에게 기대할 것이 없었기에 일찍 독립심을 키웠다. 집을 떠나려 했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애썼다. 그 결과 당신은 고통스럽지만 ‘진짜 내 인생’을 찾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골든 차일드인 형제는 어떤가. 그는 부모의 인정이라는 달콤한 마약에 중독되어 스스로 설 수 있는 다리가 퇴화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의존하거나, 심리적으로 유착되어 자신의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는 부모의 아바타로 살다가, 부모가 늙고 병들면 그 화받이 역할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혹은 자신이 부모와 똑같은 괴물이 되어,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를 학대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팬’이 되어 나르시시즘의 감옥에 갇힌다.

탈출한 당신은 상처투성이지만 자유인이다. 감옥에 남은 그는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종신형 수감자다. 누가 승자인지는 명백하다.

혈연이라는 신화를 깨고 나가라

형제자매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화해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형제인데…”라는 미련을 버려라. 그가 당신에게 보여준 것은 형제애가 아니라, 약자를 짓밟고 올라서는 비열한 생존 본능이었다.

그를 고치려 들지 마라. 그에게 당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마라. 그는 당신의 눈물을 보며 자신의 승리감을 만끽할 뿐이다. 그에게 당신의 정보를 주지 마라.

당신의 연봉, 당신의 연인, 당신의 행복한 일상을 공유하지 마라. 그는 그것을 질투하거나, 망치거나, 부모에게 왜곡해서 전달할 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가족은, 피를 나눈 사람들이 아니다.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의 아픔에 공감하며,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당신의 진짜 가족이다. 우리는 이것을 ‘선택한 가족(Chosen Family)’이라고 부른다.

어릴 적 그 식탁에서 당신은 혼자였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당신만의 식탁을 차릴 수 있다. 비난과 감시, 험담이 오가는 메뉴 대신, 따뜻한 위로와 유쾌한 농담이 오가는 식탁. 그곳에는 당신을 깎아내리는 검사도, 판사도 없다. 오직 당신을 환대하는 친구들만이 있을 뿐이다.

과거의 형제에게 작별을 고하라. 그는 당신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초반부에 등장해 주인공을 시련에 빠뜨리는 악역 조연이었을 뿐이다. 악역은 퇴장하고, 이제 주인공의 진짜 모험이 시작될 차례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만 아는 상담소 프리미엄 콘텐츠 에서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조언을 확인하세요.

또한, 나만 아는 상담소 네이버 블로그 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심리 칼럼을 만나보세요.




The post 형제자매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가족 내 희생양이 되는 아이들 appeared first on 나만 아는 상담소.

Copyright ⓒ 나만아는상담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