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아무도 없는 집, 트로트 신인 가수 윤현준(42) 씨는 설거지를 하며 흥얼거린다. 관객이 앞에 있는 듯, 인사까지 곁들이는 그의 모습에는 15년간 다니던 제약회사를 떠나 트로트에 도전한 신인의 설렘과 긴장감이 묻어난다.
그 시각, 집으로 돌아온 아내 서아름(42) 씨는 남편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손본다. 어린이집 교사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왔지만, 남편의 무대가 걸린 날이면 ‘매니저 모드’로 돌변한다. 행사장에서는 홍보와 촬영, 댄서 역할까지 도맡아 하는 그녀의 눈빛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하다.
현준 씨와 아름 씨는 초등학교 1학년과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아름 씨가 키도 크고 노래도 잘했지만, 스무 살 무렵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3년간의 연애 끝, 결혼 이야기가 없자 아름 씨는 현준 씨 부모님을 직접 찾아가 모은 적금과 가계부를 들고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현준 씨는 부모님 가게 앞 CCTV를 돌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 아내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결혼식은 올렸지만, 신혼여행도 꿈꾸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두 사람은 주원(10), 소율(6), 주호(5) 세 아이를 키우며 알콩달콩 살아왔다. 소심하고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했던 현준 씨는 치열한 영업 현장에서 늘 지쳐 있었고, 가족을 돌볼 시간도 부족했다. 육아를 홀로 책임지던 아름 씨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 씨의 권유로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선 현준 씨는 최우수상을 받으며 인생이 바뀌었다. 무대에서 환하게 웃는 남편을 본 아름 씨는 깨달았다. “저 무대가 남편이 진짜 살아 숨 쉬는 자리구나.”
그날 이후 현준 씨는 가수라는 꿈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체력은 바닥나고, 주변의 시선과 경제적 부담이 함께 따라왔다. 결국 아름 씨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진짜 행복해지는 길을 가자.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그 한마디가 현준 씨에게 용기가 됐고, 15년 동안 몸담았던 제약회사 영업 일을 떠나 트로트 가수로 새 길을 열었다.
부산에서 열린 가요제에 참가한 부부는 오랜만에 아름 씨의 외할머니 댁을 찾았다. 어릴 적 아름 씨를 키워주신 외할머니는 남편이 가수를 하겠다고 하자 걱정했지만, 현준 씨의 진심과 열정을 보며 마음을 열었다. 현준 씨 부모님도 처음엔 걱정했지만, 이제는 아들의 노래를 즐기며 응원하고 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무대에 맞춰 약주까지 끊었다.
이제 현준 씨의 노래는 더 이상 혼자만의 꿈이 아니다. 부부가 함께 만드는 무대이자, 가족 모두가 응원하는 희망이다. 그 따뜻한 노래와 이야기는 오는 1일 오전 7시 50부터 5일까지 KBS1 ‘인간극장’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해진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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