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생활 시절 보직은 호송병이었다
호송병이 뭐하는 놈들이냐?
가장 흔히 마주할수 있는건 저 2692/2696등의 건설열차 호송하는 놈들이다
우리는 저걸 '병력호송'이라 부르는데 사실 호송병 하면서 병력호송보다는 탄약, 전차등을 철도나 차량으로 실어보낼때 호송하는 화물호송 임무가 더 많다
또한 병력호송도 무조건적으로 2692/2696만 타는건 아니고 필요에 따라 버스나 민간 여객열차에 객차 몇칸 통으로 빌려서 실시하는데 대충 여기까지만 설명하고
어쨌든 호송병 하면서 마주한 어처구니 없고, 웃긴 썰이나 죽을뻔한 썰을 풀어보겠음
1) 저 공익입니다! 집에 가야 됩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신병 수송중이었다
신병들은 훈련소나 신교대에서 도시락을 하나씩 받고 나오는데(이젠 전투식량 안줌), 기차로 수송 시 뭐 밥먹이겠다고 열차를 세울수도 없고 딱히 못먹을 환경도 아니니 그냥 대충 이동하면서 먹이지만 좁아터진 움직이는 버스에서 그지랄을 했다간 당연히 말로 형용할수 없는 대참사가 속출할 것이므로 주로 휴게소에 세워서 밥을 먹이고 화장실 인솔 후에 다시 출발하게 된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후임과 함께 화장실 통제를 끝내고 인원 수에 이상없는걸 파악한 후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떤 새끼가 크게 소리질렀다
"어어..! 전 공익입니다!! 저는 집에 가야합니다!!"
??? 씨발 이게 뭔 개소리야
알고보니 이 띨띨한 놈이 수료식을 마치고 가족들과 집에 가는중(신병 배출과 육훈소 공익 수료식은 목요일로 날짜가 겹친다) 화장실을 갔다왔는데, 눈 앞에 왠 군복입은 무리들이 우루루 서있는걸 보곤 뭔지도 모르고 병신같이 같이 서있다가 따라온 것이었다
잠깐, 근데 공익 1명이 더 붙었는데 인원수가 똑같았다? 그렇다. 진짜 버스에 타있어야될 1명이 사라져있던 것이었다.
속으로 ㅈ됐다를 외치며 실시간으로 저승사자에게 다가서는 심정으로 휴게소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가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사라진 1명이 똑같에 멘탈 나간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얘는 엄청난 골초였는데 훈련소에서부터 참아온 흡연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몰래 흡연부스로 달려가 담배를 피고있던 하필 그 순간에 그 공익이 대열에 따라붙었고, 내 후임은 대열 인원수가 이상없는것을 확인하고 버스로 그대로 인솔해왔던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공익 수료식과 현역 배출 날짜가 같아서 종종 벌어지는 해프닝인데, 나는 비슷한 사례를 철도로 수송하던 와중에도 겪어보았다(이건 예전에 모갤에서 한번 풀었던것 같아서 굳이 여기선 적지 않겠다)
2) 내비대로 가고있는데?
마찬가지 버스 타고 호송하던 중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호송병 인원수가 매번 변동이 되다보니 호송병 1명이 버스 2~3대씩, 신병 100명 넘게 통제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난 그런 경우였다
보통 이럴때는 내가 기사들 번호 다 받아놓고 내 번호도 알려준 다음에 무슨일 있으면 전화 하기로 하고 나는 선두 1호차에 탑승해서 이동하게 되는데, 이 날은 아무 이슈 없이 잘 가고 있었다
그런데 목적지 도착 10분도 안남았을 시점에 기사가 갑자기 이상한 길로 빠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깜짝 놀라서 벨트도 풀고 앞으로 달려가니 기사는 "잉? 무슨 소리여 내비대로 가고있는데??"라며 내비를 보여주었다
알고보니 이 기사가 내가 알려준 주소로 잘 검색하시곤 실수로 손가락으로 화면을 건드리는 바람에(...) 완전히 이상한 곳으로 목적지 핀이 옮겨졌고 그대로 안내 시작 버튼을 눌러버린것이다.
당연히 뒷차 기사들은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아니 그 차 지금 잘못 가고 있는데요?!?!?"라며 난리가 났고 나는 내가 다시 길안내 하고 있으니 일단 먼저 가계셔라는 말씀을 드리고, 겨우겨우 차를 돌려 예정보다 약 5분을 더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어?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분명 먼저 와있어야 할 뒷 버스들이 없다? 이게 뭔 상황이여 하고 있는데 신병들 받으러 나온 부대 간부가 나한테 말하기를
"호송병.. 버스들이 호송병 안왔다고 나한테 말만하고는 애들도 안내리고 그냥 가버렸어!" ????
알고보니 뒷 기사분들이 누가 불법 주정차로 신고할까봐+내가 생각보다도 더 오래걸릴줄 알고 그냥 한바퀴 돌고온다며 슝 하고 출발한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이 기사님들 생각보다도 차를 돌려서 다시 오기가 거지같은 도로였고(...) 이 기사님들은 내가 도착하고서 15분이 더 지나서야 다시 돌아오실수 있었다.
결국 그날 나는 예상한 시간보다 40분이 더 지나서야 임무를 마치고 쓸쓸히 복귀할수 있었다..
3) 유로트럭 실사판으로 죽을뻔한 나
위에서 말했듯이 호송병은 화물호송 임무를 더 자주하게 되는데, 철도로도 하고 육로로도 하지만 보통 탄약같은건 육로로 더 많이 호송하게 된다.
(모 뉴스에 나온 실제 탄약수송 모습, 선두-중간-후미 트럭에 해서 조수석에 호송병 1명씩 타게 된다)
탄약이 필요하지 않은 부대는 없다보니 탄약 호송은 전국 각지로 가게되는데 그러다보면 저렇게 좁은 도로도 자주 지나치게 된다.
어느 날 나는 늘 그렇듯이 좁아터진 왕복 2차선 도로를 지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 앞에 끼어든 xx사단의(몇 사단인지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겠다) 군용 트럭을 보았다.
문제는 얘가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시속 30km도 안되는 속도로 저속질 하고 있던것이다. 당연히 제대에 맞춰가려는 우리 기사 아저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고 지켜보는 나도 '아.. 왜저리 느려..'하며 답답한 심정을 감출수 없었다.
계속 숨막히는 대치(?)가 이어지던 중 언덕길을 앞두고 저속차량이 뒤에 차들 먼저 보내주는 용도로 쓰이는(이걸 추월차로라고 해야하나..) 차선이 짧게 옆에 나왔는데,
우리 기사 아저씨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중앙선을 넘어서 앞지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당연히 이러면 안된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렇게 튀어나오면 군용차가 센스껏 옆에 저속차로로 들어가서 비켜줄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씨발 이 저속질 하던 군용차가 갑자기 우리를 따라 풀악셀을 밟네? 기사님은 이에 질세라 나란히 풀악셀을 밟고, "이거 위험한데요..?"라는 나의 만류와 제지에도 불구하고 연륜과 고집이 쌓인 기사아저씨는 멈출줄 모르고 엑셀에서 발을 떼지 않으신다.
그렇게 숨막히는 레이싱(?)이 이어지던 중 나는 내 정면에서 하이빔을 쏘며 달려오는 또 다른 대형트럭을 무심코 보게되고, 내 오른쪽엔 군용차, 왼쪽엔 가드레일 너머 계곡, 앞에는 트럭으로 퇴로가 완전히 없어졌음을 깨닫는다. 뒤늦게 기사님도 사태를 인지한듯 어! 단말마를 내뱉는다.
'씨발 살다살다 모르는 아저씨 트럭에 얹혀타서 유로트럭 실사판으로 뒈지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주마등이 떠오르려고 하는 무렵, 기사님에게 그 순간 슈마허가 빙의했는지 엄청난 브레이킹과 핸들링으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모면하는데 성공하고, 한숨을 돌릴새도 없이 저속질로 우리를 농락하던 xx사단 차는 엄청난 속도를 내며 사라지는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당장이라도 xx사단 소속 동기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니네 사단 500번대 번호 붙이고 다니는 부대 어떤 새끼들이냐'고 캐묻고싶었지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냥 속으로 넘기고 도착할때까지 기사님과 함께 죽어라 씹어댄걸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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