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현대무용에서 안무는 흔히 무대 위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안애순컴퍼니의 새 프로젝트 '순간편집'은 이 상식을 비튼다.
안무는 사라져도 몸에는 남는다. 40년간 쌓인 움직임의 기억이 현재의 몸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시간과 기억의 시각화 실험이다. 1985년 창단 이후 40년간 축적된 안애순의 움직임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관객 앞에 재현된다.
12월 아르코예술극장 1층 로비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과거 안무가 현역 무용수들의 몸으로 재수행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카이브 영상과 실제 몸짓이 나란히 놓이면서, 관객은 시간의 층위를 동시에 경험한다. 안무의 기록과 현재의 몸이 중첩되는 순간, 움직임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살아있는 통로가 된다.
2층에서는 역대 안무작 영상과 동시대 안무가들의 인터뷰, 라운드테이블 하이라이트가 상영된다. 관객은 공간을 오가며 안무의 흐름과 변화를 직접 목격한다. 안무의 소멸과 재생, 기억과 재해석의 과정이 한눈에 드러난다.
스튜디오 다락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대 무용수들의 쇼케이스는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과거 안무를 재료 삼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은, 안무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형되며 진화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이 실험적 접근은 안무의 연속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한다.
로비에서 이어지는 라이브 DJ와 와인이 있는 공간은 단순한 클럽이 아니라 참여적 경험의 장이다. 관객과 무용수, 음악과 움직임이 한데 뒤섞이면서, 안무와 몸, 공간과 시간이 경계를 허문다. 안무는 더 이상 무대 위에 고정되지 않고, 관객과 함께 움직이며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순간편집'은 안무와 기억, 몸과 시간의 관계를 질문한다. 안무가 사라져도 몸에 남는다는 사실은, 움직임의 지속성과 현대무용의 진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안무는 기록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몸과 관객의 경험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이번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세대 간의 대화다. 과거 안무의 흔적과 현재 무용수의 몸짓, 그리고 젊은 세대의 재해석이 공존하면서, 안무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으로 확장된다. 안무의 언어가 세대를 넘어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사례다.
관객의 위치와 관찰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로비와 스튜디오, 계단과 영상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관객은 수동적 관람자가 아니라 움직임의 일부가 된다. 안무와 공간, 시간의 상호작용을 체험하면서, 몸과 기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순간편집'은 안무와 퍼포먼스의 한계를 실험하며, 현대무용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안무가 소멸되지 않고 몸과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가며, 새로운 해석과 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현대무용을 ‘보는’ 예술이 아니라 ‘체험하는’ 예술로 이해하게 된다.
12월 월요일 밤, 아르코예술극장은 잠들지 않는다. 안무의 기억과 몸, 시간과 관객이 맞닿는 그 공간에서, 우리는 안무의 지속성과 현대무용의 미래를 동시에 사유할 수 있다. '순간편집'은 공연 예고를 넘어, 한국 현대무용의 흐름과 안무의 진화를 성찰하게 만드는 장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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