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춤추는 도시였다: 반클리프 아펠 ‘댄스 리플렉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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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춤추는 도시였다: 반클리프 아펠 ‘댄스 리플렉션’ 리뷰

엘르 2025-11-28 11:06:05 신고

서울이 춤추던 시간입니다. 2025년 10월 16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은 말 그대로 움직임의 도시였어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Dance Reflections BY Van Cleef & Arpels) 페스티벌이 런던, 홍콩, 뉴욕, 교토에 이어 여섯 번째로 서울에서 열렸는데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협업해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대학로 예술극장 등 도시 곳곳이 하나의 안무처럼 연결되며 관객과 호흡하는 시간이었죠. 이번 페스티벌은 '창작·전승·교육'이라는 댄스 리플렉션의 핵심 가치에 따라 현대무용의 역사적 작업부터 가장 실험적인 동시대 안무까지 폭넓게 담아냈습니다.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페스티벌'이 상륙하자 서울이 서로 다른 리듬과 움직임들이 교차하는, 거대한 공유의 장으로 거듭났음은 물론이고요.


〈룸 위드 어 뷰〉

〈룸 위드 어 뷰〉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세르쥬 로랑은 “안무 예술에 대한 열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점을 지닌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라고 소개했는데요. 그의 설명처럼 이번 페스티벌의 키워드는 ‘다양성’입니다. 각기 다른 문화권의 안무가들이 서울에 모여 자기만의 신체 언어를 펼쳐 보였거든요. 중국의 '타오 댄스 컴퍼니'는 전통적 움직임을 현대적인 구조로 재해석한 〈16〉과 〈17〉로 페스티벌의 문을 열었습니다. 프랑스 아티스트 론과 '(라)오호드' 그리고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은 전자 음악과 폭발적인 안무가 만난 〈룸 위드 어 뷰〉로 지금 시대의 혼돈을 생생하게 시각화했죠. 폴란드의 올라 마시에예프스카는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로이 풀러의 움직임을 다시 탐구한 〈로이 풀러: 리서치〉를 선보였고요.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는 전통춤의 지속성과 반복을 오늘의 감각으로 이어낸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로 묵직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로이 풀러: 리서치〉

〈로이 풀러: 리서치〉

〈카르카사〉

〈카르카사〉


남아프리카의 로빈 오를린은 노래와 유머, 움직임이 뒤섞인 〈바퀴를 두른 사람들〉로 남아프리카 특유의 생동감을 전했고, 벨기에 얀 마르텐스는 점프라는 하나의 동작을 통해 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도그 데이지 오버 2.0〉을 선보였습니다. 한국의 허성임이 이끄는 '허 프로젝트'는 신작 〈1도씨〉로 기후 위기 시대의 신체 감각을 선언문처럼 무대 위로 끌어올렸고, 포르투갈의 마르코 다 실바 페레이아는 집단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카르카사〉로 페스티벌의 열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죠. 이번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는 프랑스의 네모 플루레가 장식했는데요. 〈900 며칠, 20세기의 기억〉은 과거 공장이었던 성수동 '에스팩토리'의 장소성을 활용해 유로댄스 비트에 맞춰 발전과 쇠퇴, 가속화와 노후화 사이에서 몸과 시간, 공간의 기억을 새로 쓰는 작품. 관객은 공연장을 옮겨 다니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긴 안무를 걷는 듯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그 데이즈 오버 2.0〉

〈도그 데이즈 오버 2.0〉

<바퀴를 두른 사람들>

<바퀴를 두른 사람들>


반클리프 아펠과 무용의 인연은 사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1920년대 파리에서 루이 아펠이 조카 클로드 아펠을 데리고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를 자주 찾으면서부터죠. 무대 위에서 흐르는 움직임의 아름다움은 메종의 창작에도 큰 영감을 남겼는데요. 1940년대 초에는 메종 최초의 발레리나 클립이 탄생했습니다. 가볍게 날아오를 듯한 몸짓, 다이아몬드로 표현된 얼굴, 무용의 아름다움이 보석 디자인 속에 녹아든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클로드 아펠은 1967년 안무가 조지 발란신과 협업해 발레 작품 〈주얼스〉를 선보이기도 했죠. 그리고 2020년 메종은 무용계와의 오랜 교류를 토대로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을 공식 출범하며 무용에 대한 헌신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습니다.


〈1도씨〉

〈1도씨〉


2020년부터 현재까지 15개국 45개 파트너들과 함께 런던, 홍콩, 뉴욕, 교토, 서울을 거쳐 확장된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은 단순히 공연을 후원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과거의 안무 유산을 무대에 다시 불러오고, 새로운 창작이 지속되도록 돕고, 누구나 춤이라는 언어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교육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에디터가 직접 참여한 워크숍도 그 일환이었죠.


에디터는 춤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어깨춤도 제대로 못 춰요. 워크숍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전통 무용 ‘폴카 치나타’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스텝은 계속 틀리고 박자는 엇나갔죠. 그런데 그 서툼이 오히려 이상한 감각을 깨우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안 쓰던 근육을 쓰고 평생 몰랐을 호흡과 리듬을 익히면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고 탐미하는 재미가 컸어요. 무용 예술에 대한 경외감은 또 어떻고요. "춤을 잘 추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냥 계속 추면 됩니다" 아주 찰나였지만, 엇박자를 내는 에디터를 붙잡고 춤의 예술적 경지 문턱까지 이끈 무용수의 조언은 또 어떻고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의 교육적 가치, 그러니까 완벽함보다 참여, 기술보다 경험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야말로 춤이 ‘보는 예술’에서 ‘경험하는 언어’로 확장되는 경험이었습니다.


〈17〉

〈17〉

〈900 며칠, 20세기의 기억〉

〈900 며칠, 20세기의 기억〉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은 끝났지만 그 시간과 기운은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공연을 통해, 어떤 이는 워크숍의 어설픈 첫 스텝을 통해, 또 누군가는 우연히 지나가다 스친 한 장면으로 처음으로 ‘춤’이라는 언어를 배웠을 텐데요. 예술은 모두의 것입니다. 그 말은 페스티벌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요.


그런 여운 속에서 한 작품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이탈리아 안무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워크숍에서 에디터가 춤의 언어를 옹알이하게 이끈 이탈리아 볼로냐의 민속춤 폴카 치나타를 오늘의 무대로 다시 불러온 작품인데요. 두 사람이 무릎을 굽힌 채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향해 원을 그리며 돌던 사랑의 춤은 한때 널리 사랑받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합니다.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는 마지막 불씨 같은 춤을 연구해 듀엣 공연과 워크숍이라는 두 개의 형식으로 오늘의 신체에 맞는 움직임으로 복원했는데요. 그의 무대에서 폴카 치나타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시간이 몸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는가’를 탐구하는 움직임의 시(詩)에 가깝습니다.


이탈리아 안무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

이탈리아 안무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페스티벌을 위해 방문한 서울의 단상은

서울에 도착했을 때 도시의 리듬이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처음 이틀은 그 경쾌함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리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은 이번이 처음인데 앞으로 더 오래 머물며 이곳을 깊게 체험해보고 싶어요. 이런 경험들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히 무언가 남을 것입니다.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의 작업인가요

반클리프 아펠의 댄스 리플렉션은 오늘날 무용계에서 중요한 플랫폼입니다. 실험적이고 연구 중심의 제 작업을 오래 지원해왔고요. 특히 댄스 리플렉션을 통해 다양한 국가의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 큰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이유는 같은 가치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전승’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도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춤을 다루고 있죠.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한 공동체 안에서 전승돼 온 춤이기에, 그 전통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습니다. 워크숍을 여는 것도 춤을 완벽하게 배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춤을 지금 이 순간의 몸으로 ‘살아 있게’ 느끼게 하려는 것이죠.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의 〈마지막 춤을 나를 위해〉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의 〈마지막 춤을 나를 위해〉


그런 측면에서 당신의 작품에는 ‘시간, 반복, 지속, 순환’이라는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흐르는데 "시간을 춘다"라는 표현이 떠오르더군요

아름다운 표현이네요. 저는 언제나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신비로움에 매료됩니다. 그 신비가 완전히 설명되는 순간 아마 관심을 잃을 거예요. 어린 시절 곤충이나 새들이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함께 움직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움직임을 보일 때면 이 질문이 떠올라요. 제 자신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의 흐름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고요. 아마 이것이 제가 ‘시간’을 생각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보통 역사를 수평적으로만 바라보지만, 저는 그것이 수직적이라고도 느껴요. 오늘날 무대에서 우리가 추는 움직임 속에도 사실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들이 스며 있으니까요. 그래서 작품을 만들 때 느리고 반복적 흐름을 선호해요. 세계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듯, 춤도 천천히 변화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느껴요. 천천히 움직이지만, 계속 변화하는 그 감각. 그것이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창작 방식인데요. 배우로서 예술을 시작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안무가들과는 전혀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작업하곤 해요. 그 자연스러운 느림이, 제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자리잡았죠.


과거 춤에서 느낀 즐거움과 지금의 즐거움 사이에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요

어릴 때 춤은 그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자유로운 움직임은 점점 줄어듭니다. ‘유치하다’, ‘나이에 맞지 않는다’, ‘성별과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규범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 저는 춤을 ‘럭셔리한 움직임’이라고 느낍니다. 누군가와 함께 움직임을 나누는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니까요. 폴카 치나타는 서로 가까이에서 호흡과 리듬을 나누는 춤이기에 특히 그렇습니다. 서로 가까이에서 움직이고, 접촉하고, 호흡을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제가 가진 춤의 즐거움은 제 작품에서도 드러납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에도 무용수들은 서로에게 미소를 짓는데, 그것은 제가 지시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버티게 하는 힘이에요. '생존 에너지'라고 할 수 있죠. 그 에너지는 관객과 나누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기도 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함께 경험하는 것 자체가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관계는 더욱 소중해요. 제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노력도 고통이 아니라 ‘공감을 향한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예술 분야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제목은 유명한 노래에서 가져왔지만 제 작품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원래는 ‘떠나기 전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추자’라는 뜻인데요. 제가 폴카 치나타를 발견했을 때 이 춤은 거의 사라질 위기였어요. 그래서 “이 마지막 춤을 함께 추자”와 “이 춤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자”라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담았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마지막 춤은 누구와 추고 싶나요

마지막 춤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와 추고 싶은지 저는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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