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트가 귀여워 구입한 티셔츠를 집어 들다 멋쩍게 내려놓게 되는 2025년 아침. 캡 모자를 썼다가 살포시 벗고, 에어팟 맥스를 꼈다 말고 현관을 나서는 날들.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유튜브에서, 인스타에서, 모두가 말하니까. “영포티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 단어가 단순히 ‘젊어 보이고픈 사십대’를 뜻하는 용어가 아님은 알지만, 그럼에도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더라고요. 어찌 보면 좀 억울한 건가? 십 수년 전과 취향도 라이프스타일도 변한 게 없는데, 되레 눈치 보게 되었으니까. 허나 그러다 보니 다시금 ‘이정표’들이 찾고 싶어졌습니다. 어릴 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언니들’은 나보다 먼저 이 시절에 접어들었고, 여전히 멋있으니까. 그래서 염탐하고, 모아봤어요. 그 언니들의 ‘지금’ 패션을.
클로에 셰비니
@chloessevig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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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데님, 가죽, 그리고 믹스매치. 클로에 셰비니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네 가지 단어입니다. 아마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그럴 텐데, 클로에 셰비니의 서슴없는 믹스매치는 2000년대 초반 옷 좋아하는 청춘들이 신봉할 수 밖에 없는 교과서였죠. 그리고 1974년 생인 그녀의 스타일은 여전히 과감하고, 재밌고, 쿨합니다. 드레스 업 앤 다운의 간극을 보는 재미도 유효하고요. 후디 스웻 셔츠도, 캡 모자도, 리본 장식도, 미니 스커트도 나이가 선택의 제약이 될 이유는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게, 고맙고 즐거워요.
샬롯 갱스부르 & 루 드와이옹
@charlottegainsbo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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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doil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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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제인 버킨을 어머니로 둔 샬롯 갱스부르와 루 드와이옹은 시대를 풍미한 ‘파리지앵 스타일’을 대변하는 인물들입니다. 1971년 생인 샬롯 갱스부르는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고, 1982년 생인 루 드와이옹의 피드는 한층 더 짙어진 보헤미안 감성을 발휘해요. ‘인간 생 로랑’이라 불릴 만한 샬롯 갱스부르가 보여주는 오버사이즈 아우터들의 향연은 ‘멋있고 싶은’ 사십대들의 롤모델이 될 만하고, 루 드와이옹의 편안한 동시에 자유롭고 멋스러운 패션은 우리가 십여 년 전에 입던 옷들을 다시금 활용할 방법을 본보기로 보여주는 것만 같죠. ‘파리지앵은 밥보단 담배’라던, 지금 생각하면 그저 우스운 얘기들이 오가던 시절보다 더 멋있어진 이 둘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취향의 힘을, 고수의 멋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들입니다.
알렉사 청
@alexa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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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사와 알렉스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알 거예요. 밴드 악틱 멍키스의 프론트맨 알렉스 터너와 함께 파파라치에 자주 포착된 알렉사 청의 스키니진, 로맨틱한 블라우스, 미니 스커트, 사파리 점퍼(당시엔 모두가 '야상'이라 불렀지만), 발레리나 플랫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싸이월드 피드를 도배했었는지.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1983년 생인 알렉사 청의 피드는 여전히 참고할 만한 요소로 가득합니다. 빈티지인 듯 아닌 듯 자연스러움이 베어 나는 스웻 셔츠와 티셔츠 셀렉션부터 레이어링 방법, 컬러 믹스까지, ‘역시는 역시’랄까. 오랜만에 다시 만난 브랜드 메이드웰과의 협업 라인도 11월에 출시되었다고 하니, 왠지 더 반갑네요.
애슐리 올슨 & 메리 케이트 올슨
Getty Images
마지막으로 미국 나이로 치면 내년에 사십 대이고, 언니도 아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인 올슨 자매의 최근 모습(올해 9월)이 반가워서 저장한 사진 한 장. 1986년 생인 쌍둥이 자매는 두 살에 데뷔해 2012년 경 배우로서의 활동을 멈출 때까지 줄곧 슈퍼스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현재, 이 둘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브랜드 더 로우를 사랑하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으니, 이젠 완전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셈. 올슨 자매는 서로 다른 ‘추구미’로도 유명했는데 클린하고 모던한 애슐리와 〈뉴욕타임즈〉가 ‘홈리스 룩’이라고까지 평했던 메리 케이트의 대비가 고스란히 담긴 파파라치 컷들의 재미와 짜릿함이란. 지금도 잊을 수 없죠. 최근 사진에서도 이 둘은 대쪽 같은 일관성(메리 케이트는 훨씬 정제되었지만!)을 보여주는데 그래서일까. 팬으로서 애슐리가 보여주는 모던함의 정수가 더 로우의 큰 축이라면, 그걸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건 ‘보헤미안 시크’의 원조격인 메리 케이트가 가진 의외성 아닐까 싶습니다. 파파라치 판을 뒤집어놓은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올슨 자매의 스타일링은 당시에는 충격적으로 예쁘고 새로웠는데요. 지금 봐도 참고할 것 투성이니 꼭 한 번 검색해보시길.
공자는 사십을 ‘불혹’의 나이라 이야기했어요. 최근 뉴스에서는 금융권에서 퇴직 나이를 40세로 내리기 시작했다고 난리입니다. 그런 와중에 각종 SNS에는 영포티 밈이 넘치고요. 이쯤 되면 ‘사십대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죠. 그나마 스스로 내린 결론은 ‘치열한 20대, 커리어에 몰두하는 30대를 지나, 조금 더 자신을 알게 되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건데요. 그러니 소위 ‘힙하다’는 아이템을 걸치는 사십대들을 한심하게만 바라보지는 말아주길. 이제야 취향을 깨달은 이들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런 스타일을 오랫동안 좋아해서 계속 입었을 수 있으니. 옷은 그저 취향의 반증이고, ‘어린 척’하고 싶은 마음은 전무할 뿐더러, 성숙과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고, 노력하는 사십대도 많다는 걸 가끔은 기억해주길. 구구절절하다고? 맞아요. 이건 사실 여전히 슈프림 티셔츠를 입고, 귀여운 키링에 심장을 부여잡는 나와 내 친구들에 관한, 사적인 변명의 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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