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모·지안 왕·무라스와 협연…포디움 떠나 피아노 연주
바이올린→첼로→비올라 순으로 합류…'정명훈 실내악 콘서트'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포디움 대신 피아노 앞에 앉아 모차르트와 베토벤, 브람스를 선사했다.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 실내악 콘서트'는 지휘자가 되기 전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쌓았던 정명훈의 음악적 업적을 되돌아보는 공연이었다.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위에 입상한 뒤 누나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피아노 3중주단인 '정 트리오'로 활동했다.
이날 공연은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삼중주, 피아노 사중주를 차례대로 선보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정명훈 앞에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 비올리스트가 순서대로 추가돼 연주하는 식이었다.
정명훈과 호흡을 맞춘 첫 주자는 2015년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였다. 두 연주가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21번'을 연주했다. 1778년 작곡된 이 곡은 그동안 반주 역할에 불과했던 바이올린을 피아노와 동등한 위상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정명훈의 피아노와 양인모의 바이올린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곡이었다.
무대에 오른 정명훈과 양인모는 모차르트의 이런 작곡 의도를 반영한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다. 72세의 정명훈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건반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짚어냈고, 양인모는 이를 능숙하게 받아내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율로 승화했다. 마치 두 명의 천재 연주가가 오래된 선술집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는 연주였다.
이어진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5번' 무대에는 1994년 쾰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이 합류했다. 단짝인 첼로가 등장하자 양인모의 바이올린 소리는 더욱 힘을 얻었다. 두 현악기가 공연장의 분위기를 주도할 때쯤, 정명훈은 특유의 피아노 트레몰로(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는 듯이 되풀이하는 주법)로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냈다. 엎치락뒤치락 긴장감을 쌓아가던 세 연주가는 마지막 밝은 분위기의 3악장에서 절묘한 화합을 이뤄내며 관객을 안심시켰다.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3번'이 연주된 세 번째 무대에는 2008년 프림로즈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우승한 미국 비올리스트 디미트리 무라스가 자리했다. 국제 콩쿠르를 제패한 현악 연주가 3명의 기세등등한 연주에도 정명훈의 피아노는 흔들림이 없었다. 1시간 가까이 연주를 이어간 탓인지 정명훈은 2악장에 들어서자 오른 손목을 여러 차례 흔들며 팔 근육을 푸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집중력을 되찾고 피아노가 중심인 3악장과 4악장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마지막 악장이 끝나자 인터미션(중간 휴식)을 포함해 90분 가까이 피아노를 연주한 거장의 노고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호응했다. 5분 넘게 박수가 이어지자 정명훈과 3명의 연주가는 다시 자리에 앉아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3번 중 2악장을 앙코르로 선보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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