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이 발표한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에는 약 1546만명(2024년 말 기준)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29.9%에 해당하며 가구 수로는 591만 가구에 달하는 수치다.
이제 공원이나 산책로에서는 아기나 어린이보다도 반려동물을 더 자주 보게 된다. 2023년에는 마침내 일명 ‘개모차’가 ‘유아차’ 판매를 초월하기까지 했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들도 앞다투어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심지어는 대형 쇼핑몰의 ‘푸드코트’에도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전용 식사 공간이 마련되고 있다. (기자가 본 바로 이 공간은 항상 만석이었다) ‘반려동물을 배려하지 않는 사업은 어렵다’는 공식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출판업 계도 예외는 아니다. 어린이·청소년 도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성인 도서에도 흔하게 반려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작가들은 반려동물을 통해 관계, 생명, 가족, 공존, 이해, 사랑, 평등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낸다. 이기호의 장편소설인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문학동네) 또한 이러한 가치에 밀접하게 닿아있다.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는 다른 그들의 맹목적 사랑 말이다.)
반려견 이시봉의 보호자 ‘이시습’은 술에 의존하며 방황 중인 20대 청년이다. 아버지를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후, 시습의 가족들은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태다. 차도로 내달린 이시봉을 구하려다 아버지가 차에 치여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시봉을 전라도에서 입양해 온 건 시습의 아버지였다.)
이시봉에게 잘못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이시봉을 용서하지 못하는 어머니 때문에 시습은 이시봉을 마음껏 사랑해 주지 못하며 근근이 이시봉과의 볼품없는 삶을 이어간다. (시습은 이런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이시봉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비숑 프리제만 전문으로 다룬다는 브리딩 업체 ‘앙시앙 하우스’가 나타나 시습에게 놀라운 말을 전한다. 이시봉이 과거 유럽 왕실에서 기르던 고귀한 혈통으로, 이제 세상에 몇 마리 남지 않은 ‘비숑의 왕’이라는 것.
업체는 적지 않은 돈과 함께 이시봉을 위한 호화로운 시설과 체계적이고 안락한 케어가 보장되어 있다며 이시봉을 양도할 것을 요청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 여겼지만, 업체 대표의 뜨거운 애정 공세를 지켜보며, 마음껏 사랑도 받지 못한 채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는 이시봉을 바라보며, 시습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진다. 급기야는 ‘자신이 이시봉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
한편 이시봉의 혈통에 관한 앙시앙 하우스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어린 이시봉을 입양할 당신의 행적을 추적하던 시습은 아버지의 지인 중에 ‘인간 이시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이렇게 이시봉의 이름에 관한 비밀이 밝혀지며 본격적으로 상처 입고 방황하는 인간, 순수해서 명랑한 개, 스페인과 프랑스, 한국을 잇는 파란만장한 대서사로 나아간다. 그리고 시습은 이시봉이 업체의 손아귀에 넘어가려는 순간, 그토록 기나긴 시간과 무수한 사연을 거쳐 자신의 곁에 오게 된 존재, 이시봉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는다. 또한 인간의 기준으로 반려동물의 행복을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되찾기 위해 달려 나간다.
이 소설은 비숑 프리제 ‘이시봉’이 어느 가족의 삶에 깃들기까지 펼쳐지는 우여곡절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개들의 일생을 몇 대에 걸쳐 좇아나가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되돌아본다. 아울러 인간의 방식이 아닌 반려견의 방식, 모든 것이 정직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자신의 짧은 생애를 순수한 사랑으로만 가득 채우는 이시봉의 삶의 방식을 깨닫게 한다.
작가 윌리스 사이프는 이렇게 말했다.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순진무구하게 의존하며 우정과 사랑을 준다. 무엇보다도 반려동물은 우리를 판단하지 않은 채 온전히 받아들인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역할이 무엇이든, 동물들은 그것이 되어주며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반려동물 양육 가족은 오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반려동물과의 동거를 통해 생의 안정감과 형용할 수 없는 개인적 풍요로움을 누린다. 비록 그 생에는 짧지만 인간과는 다른 그들의 슬프도록 맹목적인 사랑의 방식 때문이다. 때론 어리석어 보이고, 터무니없이 명랑해 보이는, 지고지순 한 그 사랑 말이다. 그렇다면 끝없는 불안과 투쟁의 사회에서 우리가 그나마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또 다른 수많은 이시봉 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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