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토피아〉는 유전자에 새겨진 야만성을 극복한 동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야만적 본능을 이기는 것이 왜 '진화'이며, 그것이 왜 주토피아에 필요한 지를 토끼 주디(지니퍼 굿윈)와 여우 닉(제이슨 베이트먼)의 서사로 풀어냈죠. 포유류 통합 정책 실행 이전이었다면 주디와 닉은 각각 먹잇감과 포식자로 만났을 겁니다. 하지만 주디는 주토피아 최초의 토끼 경찰로 인정받았고, 닉은 '여우는 동물성이 교활하다'는 사회적 편견을 넘어섰습니다. 바꿀 수 없는 특질 때문에 차별당하던 이들이 오히려 그걸 지렛대로 삼아 도시를 구했기 때문이죠.
영화 〈주토피아〉
바꿔 말하면 주디와 닉은 '주토피아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명제가 사실임을 입증한 죄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명하며 살아야 합니다. 토끼가 홍당무 농사를 짓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디는 모두의 걱정과 냉소 속에 경찰이 되길 택했습니다. 이 길에 따르는 어려움은 온전히 주디 혼자 짊어지게 되죠. 버니빌에서 상경해 모진 훈련을 마치고 경찰학교를 수석 졸업했더니 이젠 '진짜 경찰'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하라고 합니다. '여우는 뒤통수 친다'는 편견에 질려 진짜로 남 뒤통수를 치면서 살아온 닉도 사실 그런 동물이 아니라는 걸 계속 확인받아야 하고요. 동물들의 유토피아에서도 현실은 이토록 잔인합니다.
영화 〈주토피아2〉
〈주토피아 2〉가 '스타 경찰'이 된 주디의 압박감으로 출발하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원래도 앞뒤 가리지 않는 과한 열정의 소유자였던 주디는 이름 앞에 늘어난 수식 탓에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와 함께 주토피아를 구한 공으로 경찰 특별 채용된 닉과 정식 콤비를 이루지만, 이내 새로운 과제에 당면합니다. 두 동물이 과연 '좋은' 팀인지를 증명하라는 거죠. 주디는 〈주토피아〉 때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이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닉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세상을 향한 무조건적인 희생이나 헌신이 스스로의 안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는 게 닉의 마음입니다.
2편의 시점은 주디와 닉 콤비가 주토피아를 구하고 일주일 후입니다. 정식으로 파트너가 된 지 고작 며칠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부터 주디는 주디대로 답답하고, 닉은 닉대로 피곤한 상황이죠. 동물 상담까지 받아보지만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디의 강한 정의감과 추진력은 그가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반면 닉의 섬세함과 신중함은 장점이지만 약해 보일까 봐 불편한 이야기를 회피하는 습관은 단점입니다. 두 동물의 특징은 공존하기 때문에 갈등을 빚습니다.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각자의 차이는 함께 있을 때 더 커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영화 〈주토피아2〉
〈주토피아 2〉가 결과적으로 영리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건 이 '차이'라는 키워드의 활용 방법 덕입니다. 1편에는 주토피아에 우림, 사막, 설원이 있다는 배경이 있었죠. 말하자면 포유류 중심의 세계관으로, 육식과 초식 혹은 대동물과 소동물 정도의 차이만 존재했던 거예요. 2편에는 주토피아가 100년 전부터 '기후 장벽'을 세웠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기후 장벽은 모든 동물들이 한 도시에 모여 살 수 있도록 개발된 시스템인데, 이에 따라 〈주토피아 2〉에는 10개나 넘는 구역이 추가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파충류나 양서류 등의 반수생 동물들이 서식하는 습지 마켓입니다. 더 많은 캐릭터들이 1편보다 훨씬 고유성을 갖춘 모습으로 조성됐습니다. 영역동물이라는 고양이의 특징이 영토 확장을 위해 뭐든지 하는 캐릭터에 녹아난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차이'에 집중하고 강조한 업그레이드는 가장 먼저 세계관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담보합니다. 자연스럽게 속편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고요. 또 더 커진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차이'를 가진 채 '공존'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다할 최선이 무엇인지, 근본적 의문을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영화 〈주토피아2〉
디즈니 3D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로 메인 캐릭터 자리를 꿰찬(?) 뱀, 게리 더 스네이크(키 호이 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포스터에 드러난 게리의 눈은 그가 빌런이 아니라는 스포일러나 마찬가지였죠. 게리는 〈주토피아 2〉에서 디즈니의 기획력과 기술력을 가장 돋보이게 한 캐릭터였습니다. 보통 발이 많거나 없는 동물이 움직일 때 불쾌감이나 위화감이 느껴지기 일쑤인데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독사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감고 보는 뱀의 특징이 포옹을 좋아하는 성격이 된 것도 왠지 뭉클합니다. 스르륵 품을 파고들며 "Permission to hug?(안아도 될까요?)"라고 묻는 게리의 목소리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주디와 닉, 게리를 비롯한 주토피아의 모든 '언더독'들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바쁩니다. 정의나 평화 같은 숭고한 가치는 어쩌면 부차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증명이 끝나면 다른 증명에 나서야 합니다. 게리 역의 키 호이 콴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인간은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피하거나 숨는 경향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모두 다르고 그 다름이야말로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때 비로소 더 아름답고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증명의 쳇바퀴에서 내려오기 위해선 자신을, 또 서로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주토피아 2〉가 전하는 메시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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