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마약류범죄의 은밀한 특성과 유통 형태를 고려할 때, 마약류가 은닉된 상자를 취급하는 행위와 마약류 자체를 직접 취급하는 행위 사이에 위험성의 차이가 없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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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및 마약거래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30대 A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2024년 7월 중순경 텔레그램 구인·구직 채널을 통해 알게 된 성명불상의 마약류 판매상으로부터 보수를 받기로 하고 이른바 ‘드라퍼’ 역할을 맡았다. 드라퍼란 국내로 배송된 마약류가 담긴 국제우편물 상자를 수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A씨는 2024년 7월 31일 저녁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일대에서 또 다른 공범이 이천우체국에서 수거해 옮겨놓은 국제우편물 상자를 수거했다. 그러나 이 상자에 담겨 있던 장난감 안에 숨겨져 있던 마약류는 이미 인천공항세관에서 적발·압수된 상태였고, 상자 안에는 장난감만 남아 있었다.
이튿날인 8월 1일에는 네덜란드에서 밀수입된 MDMA(엑스터시) 842정(시가 약 2526만원 상당)이 들어있는 또 다른 국제우편물 상자를 평택시에서 수거했다.
검찰은 A씨를 향정 및 마약거래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에서는 실제 마약류가 없는 상자를 수거한 행위도 마약거래방지법상 ‘그 밖의 물품을 마약류로 인식하고 소지’한 것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마약거래방지법 제9조 제2항이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라고 규정할 뿐 물품의 외관이 마약으로 오인될 수 있는 것으로 내용이나 성질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씨가 범행 이전 상선과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마약류 거래 관련 내용을 인식할 수 있었고, 수사기관에서도 마약류임을 인식했다고 진술한 점, 인터넷으로 ‘국제우편 배송조회’나 드라퍼 관련 검색어를 검색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우편물 상자 안에 마약류가 들어있다고 인식하면서 상자를 수거한 것”이라며 “단지 우편물 상자의 외관이 알약 등 마약으로 오인될 수 없다는 사정만으로 법률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500만원 이상 MDMA 수수에 관해서도 재판부는 A씨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A씨가 전날 장난감을 해체하며 마약류를 찾으려 했던 점,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 수입의 경우 수입량이 적지 않은 점, A씨가 이전에 케타민을 투약한 경력이 있어 마약류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한 판단이다.
A씨는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마약거래방지법 제9조 제2항의 ‘약물’은 정제, 환, 가루, 액상, 패치 등 의약품의 외관을 갖춘 물품을 뜻하고, ‘그 밖의 물품’은 약물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물품은 물론 그 내용물을 마약류로 인식할 수 있는 물품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했다.
2심 재판부는 “마약류 유통과정에서 마약류를 담거나 포장하는 행위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며 “이 규정은 마약류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마약류가 포함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양도·양수하거나 소지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해석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마약거래방지법 제9조 제2항이 문언상 마약류 인식의 대상으로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라고 규정할 뿐 물품의 형상이나 성질 등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어떠한 물품이라도 마약류로 인식되었다면 이 조항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마약류범죄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마약류는 상자 등의 내부에 든 상태, 즉 내용물이 감추어져 있는 상태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에도 마약류 자체만 유통되는 경우와 비교하여 행위의 위험성 및 처벌의 필요성 등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마약류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상자 등의 내부에 마약류가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이를 양도·양수 또는 소지하였으나 실제로는 상자 등의 내부에 마약류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 조항을 위반한 행위로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은 마약거래방지법 제9조 제2항의 ‘그 밖의 물품’에 대한 해석 기준을 명확히 한 것이다. 마약류가 상자나 포장 용기에 담긴 채로 유통되는 현실을 반영해 행위자가 상자 내부에 마약류가 있다고 인식하고 이를 취급한 경우에도 해당 조항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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