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형벌이 아니라, 가장 화려한 독대다.

현관문이 닫힌다. 도어락이 잠기는 기계적인 소음이 멎자, 집 안에는 완벽한 적막이 찾아온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 순간은 휴식의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이 순간은 공포의 시작이다.

당신은 황급히 TV를 켜거나,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유튜브를 재생한다. 누군가가 떠드는 소리, 의미 없는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워야만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혼자 있는 시간. 당신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독방에 갇힌 수감자가 느끼는 유폐의 공포와 닮았다. 당신은 물리적으로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소음이 사라진 그 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남겨질, 당신이라는 낯선 타인과 마주하는 일이다.

그와의 관계 속에서 당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당신은 항상 누군가의 시선 속에 있을 때만,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줄 때만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는 당신이라는 행성의 자전축을 뽑아버렸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 돌지 못하고, 오직 그라는 태양 주위를 도는 위성으로만 존재했다. 이제 그 태양은 사라졌다. 궤도를 잃은 위성은 우주의 미아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부유한다.

이 끔찍한 부유감을 잊기 위해 당신은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찾는다. 술을 마시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쇼핑을 하고, 밤새도록 넷플릭스를 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진통제일 뿐이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더 거대한 공허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 느끼는 이 외로움은,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 안에 당신이 없어서 생기는 공허다.

고립과 고독의 결정적 차이

우리는 흔히 혼자 있는 상태를 외로움(Loneliness)이라고 퉁쳐서 부른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외로움과 고독(Solitude)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외로움은 타인의 부재에서 오는 고통이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기를, 구원자가 문을 두드려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동적인 상태다. 이것은 결핍이고, 가난이며, 의존이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상태가 바로 이것이다. 당신은 혼자 있는 방을, 누군가가 들어와 채워줘야 할 대기실로 취급하고 있다.

반면 고독은 자발적인 격리다. 이것은 타인의 부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실재(Presence)로 가득 찬 상태다.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기 위해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는 능동적인 행위다.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에게서 고독할 능력을 거세했다. 그는 당신이 혼자 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당신이 혼자 사색하거나 즐거워하면, 그는 자신을 소외시킨다며 비난했다. 그는 당신을 외로움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오직 자신만이 그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세뇌했다.

이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이 처절한 외로움을 우아한 고독으로 변환시키는 연금술이다.

대기실의 문을 닫아걸고, 그곳을 당신만의 서재로, 당신만의 성소로 만드는 작업이다. 타인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으로 그 공간을 꽉 채워, 감히 타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지루함, 그 위대한 멈춤

고독으로 가는 길목에서 당신을 가로막는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지루함이다. 스마트폰을 끄고, TV를 끄고,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어 보라. 5분도 지나지 않아 몸이 비틀리고 좀이 쑤실 것이다. 뇌는 도파민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을 친다. 오만가지 잡생각이 떠오르고, 과거의 기억이 당신을 괴롭힌다.

당신은 이 지루함이 싫어서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든다. 하지만 멈춰야 한다. 그 지루함이야말로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정한 나를 만나는 입구다.

지루함은 뇌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을 멈추고, 내부로 시선을 돌리는 전환점이다. 흙탕물이 가득 든 컵을 가만히 두면, 흙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윗물은 맑아진다. 지루함은 바로 그 침전의 시간이다.

그동안 당신의 내면은 그가 휘저어 놓은 흙탕물로 가득했다. 당신은 그 탁한 물속에서 허우적대느라 당신의 본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가만히 있어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지루함 속에서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려라.

어느 순간, 그 고요한 수면 위로 당신의 진짜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내 안의 낯선 타인과의 독대

그렇게 마주한 당신의 민낯은, 당신이 상상했던 것처럼 아름답거나 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길들여진 당신은, 자신이 착하고 배려심 깊고 순종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고독 속에서 만난 진짜 당신은 화가 나 있고,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찌질하고, 질투심 많고, 몹시 지쳐 있을지도 모른다.

그 낯선 타인을 보고 도망치지 마라.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그가 좋아했던 연기하는 당신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당신이다.

그 낯선 여자에게 말을 걸어라. 너 지금 기분이 어때. 뭐가 먹고 싶어. 뭐가 제일 억울해. 처음에는 어색할 것이다. 평생 남의 기분만 살피느라 내 기분을 묻는 법을 잊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계속 묻다 보면, 어느 날 그녀가 대답하기 시작한다.

• - “나 사실 그 영화 재미없었어.”
• - “나 매운 거 싫어해.”
• - “나 지금 아무도 안 만나고 그냥 자고 싶어.”

이 사소한 고백들이 터져 나오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타인의 위성 궤도에서 이탈하여 당신만의 중력을 갖게 된다. 당신이 당신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존중해 줄 때, 자존감이라는 근육은 단단하게 붙기 시작한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

고독의 기술을 연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 밥을 먹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때우는 식사가 아니다. 오직 음식과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정식 식사다.

나르시시스트와의 식사는 전쟁이었다. 그의 입맛에 맞춰야 했고, 그의 기분을 살피며 체할 듯이 밥을 넘겨야 했다. 이제 당신은 온전히 당신의 미각을 위해 메뉴를 고를 수 있다.

천천히 씹어라. 재료의 맛을 느끼고, 음식이 식도를 넘어가는 감각에 집중해라. “이거 맛있다.” “이건 좀 짜네.” 이 감각적인 판단의 주체는 오직 당신이다.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다.

이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이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대접하는 의식이다. 내가 나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나의 감각을 존중해 주는 이 행위가 반복될 때, 당신의 무의식은 깨닫는다. 나는 함부로 취급받아도 되는 존재가 아니구나. 나는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어른이구나.

고독은 가장 화려한 사치다

진정한 나를 만난다는 것은,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금요일 저녁, 텅 빈 집안의 적막을 공포가 아닌 평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좋아하는 차 한 잔을 끓여 놓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혹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쳐다보는 대신, 지금 이 순간 내 피부에 닿는 담요의 감촉을 즐기는 시간.

이때 당신은 깨닫게 된다. 나,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나랑 노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구나. 굳이 누가 옆에 없어도, 나는 이미 충만하구나.

이 경지에 도달하면, 당신은 더 이상 나쁜 관계에 목매지 않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이렇게나 달콤하고 자유로운데, 굳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내 인생에 들여 이 평화를 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준은 높아진다. “나의 이 고독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만 내 곁에 올 수 있다.”

고독은 형벌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정신적으로 독립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특권이다.

이제 방문을 닫아라. 세상의 소음을 끄고, 당신 안의 목소리를 켜라. 당신이 평생 기다려온 그 구원자는, 바로 그 방 안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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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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