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안정의 해법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국내 투자와 자본 유입을 늘리고 주식·자본시장의 매력을 높여 원화 수요를 회복하는 장기적 체질 개선에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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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고물량 사라진 외환시장…“달러 들어와도 안 바꾼다”
20일 서울외환시장에서 환율은 1467.9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14일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성 발언과 실개입이 나오면서 환율은 일시적으로 1450원대로 내려갔으나, 이후엔 줄곧 상승해 다시 시장의 저항선인 1470원 부근으로 올라온 것이다.
환율이 1470원 안팎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자, ‘개입만으로는 고환율을 돌려세울 수 없다’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환율이 일시적으로 출렁여도 다시 고점으로 회귀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현재 상황은 일시적인 환율 불안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외환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수출기업의 네고(달러 환전) 물량이 증발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수출대금이 들어오면 일정 비율을 원화로 바꿔 운전자금으로 썼지만, 지금은 대미투자로 인한 글로벌 생산비 확대, 현지 설비 확충 등으로 달러를 현지에 그대로 쌓아두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여기에 ‘서학개미’로 일컬어지는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 증가가 맞물리며 달러 유출 구조는 더 고착되는 모습이다.
정부가 최근 삼성전자, SK,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을 잇달아 만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 주요 수출기업 경영진을 만나 “외환 수급 개선을 위해 긴밀히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달러로 받은 수출대금을 원화로 환전해 국내에 투자해 달라는 취지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외환시장에는 해외 직접투자와 대규모 달러 수요가 굳어져 있어 정부 요청만으로 기업이 네고를 늘릴 유인은 약하다”고 지적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대기업 달러만 일부 시장에 나와도 환율 안정 효과가 크지만, 대기업도 미국 투자와 자본계획이 있어 정부의 요청이 기업들의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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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내 투자 유인 인센티브 마련해야
미국 현지투자 확대로 장기적으로 35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정부는 기업의 투자 방향을 국내로 되돌리고 개인·외국인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업에 달러를 풀라고 요청하거나 일시적 환율 방어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환율 안정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부가 검토 중인 인센티브는 △국내주식 장기투자자 세제혜택 강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한도 확대, △기업 해외소득 이중과세 완화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구 부총리 산하 ‘국제금융정책자문위원회’를 연내 신설할 계획이다. 10명 안팎의 교수·시장전문가로 구성해 미국 투자 펀드 확대, 미·중 갈등에 따른 변동성 확대, 해외 포트폴리오 급증 등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조언을 받는 것이 목적이다. 기존 국제금융국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보다 장기적·전략적인 국제금융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고, 이번 신설되는 위원회는 과거보다 격상돼 부총리 급에서 진행된다”라며 “2023년에 적용했던 해외 수익 세액 공제 혜택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다시 설계하는 것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미투자가 장기적인 만큼 환율은 언제든지 치솟을 수 있어 앞으로 외환보유고를 낭비하면 안된다. 시장개입도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며 “이보다는 국내 산업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외환시장 구조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도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 조절과 대체투자 확대, 환헤지 비율 조정 등 달러 공급 요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장기적인 외환수급 구조 개선 전에는 환율 상단에 대한 명확한 경고와 시장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당국에서 강력한 고점 신호가 명확히 나와야 수출기업이 움직일 수 있다”며 “아직 오버슈팅 레벨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당국의 개입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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