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향하는 지금 이 시기, 밤이 일찍 찾아오는 산책길에서 나뭇잎이 살짝 흔들릴 때가 있다. 처음엔 바람이라 생각되지만, 자세히 보면 나뭇가지 사이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작은 그림자가 보인다. 소리 하나 없이 활공하는 하늘다람쥐로, 귀엽고 친숙한 이름과 달리 한국에서 멸종위기 Ⅱ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이다. 도시의 산책로 근처에서도 발견되지만, 그만큼 서식지가 사람의 생활권과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밤하늘을 나는 듯한 설치류, 하늘다람쥐의 생태
하늘다람쥐(Pteromys volans)는 설치류이며, 앞발과 뒷발 사이에 피부막(비막)이 연결돼 있어 활공할 수 있다. 숲속 나무에서 나무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활공 거리는 짧게는 10m, 길게는 50m 이상에 달한다. 꼬리는 길고 풍성해 방향을 조절할 때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주로 야행성이라 낮에는 나무 구멍 안에서 쉬고, 해가 지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먹이는 나뭇잎, 껍질, 솔방울 속 씨앗, 버섯 등이다. 계절에 따라 먹이를 바꾸며, 겨울에는 저장해 둔 먹이를 꺼내 먹는다. 다른 설치류와 달리 나무 위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땅으로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다.
하늘다람쥐는 사람 눈에 자주 띄진 않지만, 강원도, 경기 북부, 충청 북부, 경북 산간 지역에 서식하고 있으며, 도시 외곽 녹지에서도 목격 사례가 늘었다. 다만 개발과 도시 확장으로 서식지가 좁아져 하천 변이나 인근 시설물 주변까지 이동하고 있다.
도심에서도 나타나는 이유
도심 주변에서 하늘다람쥐가 발견되는 이유는 서식지 단절 때문이다. 이 동물은 숲이 이어진 곳에서만 활공할 수 있는데, 산림이 잘려 나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때문에 작은 녹지나 공원에서도 발견되는데, 한 연구에서는 하늘다람쥐가 하천에서 200m 이내, 수관이 넓고 수령이 오래된 활엽수림 근처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도시 외곽에서 발견되는 개체는 대부분 고립된 무리다. 나무 구멍이 적거나 먹이가 부족해 생존율이 떨어진다. 밤에는 가로등 빛을 피하며 나무 사이를 조용히 이동하며 인간 활동이 적은 시간대를 이용해 먹이를 구하러 나오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도시에서도 종종 발견되지만, 이는 서식지 파괴의 신호이기도 하다. 개발로 숲이 잘리면 활공거리를 확보할 수 없어 교통사고나 포식자 노출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고속도로와 리조트, 스키장 등으로 숲이 나뉘면 개체군이 분리돼 번식이 어려워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종
하늘다람쥐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 328호로 지정됐다. 또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에 해당하며, 포획이나 거래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지정 이후에도 개체수는 지속적으로 줄었다. 원인은 불법 벌목과 서식지 파괴, 먹이 부족, 야생 고양이 등 외래 포식자의 증가다.
하늘다람쥐는 개체 간의 거리가 가까워야 번식할 수 있다. 1년에 한 번 번식하며, 한 번에 2~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번식 시기는 4월 전후로, 둥지는 주로 오래된 참나무나 자작나무 속에 만든다. 둥지에는 마른 이끼와 잎을 깔아 보온성을 높인다.
또한 하늘다람쥐는 날개처럼 생긴 피부 막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활공 시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몸을 납작하게 펴고 꼬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속도를 조절한다. 착지할 때는 나무줄기를 붙잡으며 충격을 흡수한다.
활공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포식자에게 쫓길 때 땅으로 내려가지 않고 다른 나무로 이동해 위험을 피한다. 나무 사이 간격이 일정 이상 벌어지면 활공이 어려워지므로, 숲의 연결성이 생존과 직결된다.
하늘다람쥐의 서식지 보존을 위해 각 지자체에서는 ‘생태통로’와 ‘녹지 연결로’를 확충하고 있다. 서울, 강원,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도로 위 생태육교에 나무를 심어 하늘다람쥐가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오래된 수목을 함부로 자르지 않고, 구멍이 난 나무를 보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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