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강해인 기자] 장기화된 불황 속에 영화계가 돌파구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영화계의 위기라는 말은 쉬지 않고 언급되고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영화관을 찾는 관객수는 폭락했고, 좀처럼 이전의 분위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12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영화관을 찾은 전체 관객 수는 1억 2,313만 명이었다. 이는 2023년보다 201만 명 감소한 수치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이었던 2017~2019년 같은 기간 평균(2억 2,098만 명)의 55.7%에 불과한 기록이다.
올해 분위기는 더 나쁠 것으로 보인다. 흥행의 지표로 불리는 천만 영화가 작년에는 총 2편 있었다. ‘파묘'(1,191만 명)와 ‘범죄도시4′(1,150만)가 2024년 흥행을 주도했다면, 올해는 단 한 편도 천만 관객 돌파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 지난 5월에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합병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관객 수 감소를 비롯해 많은 지표가 영화계의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최소한 영화관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불황에도 영화관 3사는(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는 높은 티켓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바이러스 이전 영화계는 호황을 누렸고, 관객의 높은 수요가 있었기에 티켓 가격을 올리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같은 논리라면 관객의 발걸음이 줄면 가격을 낮춰야 했다.
하지만 영화관 3사는 티켓 가격을 2020년부터 3년 연속 천 원씩 인상했다. 현재 평일에는 1만 4천 원, 주말에는 1만 5천 원을 내야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다. 바이러스 시국에는 공급에 제한이 있어(상영관 축소 등) 수익 구조를 보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엔데믹 이후는 상황이 다르다. 다시 누적 관객 수가 1억 명을 돌파했고, 바이러스가 한창일 때보다 영화관이 안정화되고 있기에 가격 전략도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
티켓 가격 인하가 영화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는 근거는 충분하다. 우선, 관객들이 설문조사 등을 통해 극장 가격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 바 있다. 그리고 문화가 있는 날과 정부 지원 영화 할인 쿠폰 등 티켓 가격이 떨어질 때 극장을 찾는 관객수가 대폭 증가하는 경향을 꾸준히 볼 수 있다.
이런데도 영화관이 똘똘 뭉쳐 가격을 고점에서 유지한다면, 영화 시장을 살릴 의지가 없거나 아직은 버틸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티켓 가격이 떨어지면 영화관의 이익이 단기적으로는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장 분위기를 활성화시킬 변곡점을 만드는 게 더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관객의 발길을 유도하고 만족도를 높여야 할 시점이다.
영화관이 높은 티켓 가격을 지키며 시장의 불황을 방관하고 있을 때 제작자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했다. 줄어든 관객 수를 고려해 제작비 자체를 대폭 줄이는 방안이 등장했다. 올가을 깜짝 흥행에 성공한 연상호 ‘감독’의 흥행은 독특한 모델을 보여줬다. 이 작품은 작품성도 뛰어났지만, 제작비가 2억 원으로 알려져 더 화제가 된 바 있다.
연상호 감독은 소규모 스태프와 적은 회차로 기동력 있게 움직였고, 배우와 제작진에게 러닝 개런티 형식으로 인건비를 지급하는 방법으로 제작비를 대폭 낮췄다. 덕분에 ‘얼굴’은 10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제작비의 50배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연상호 감독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유연한 제작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연상호 감독처럼 제작비를 대폭 줄일 수 없는 경우에는 아시아 시장을 활용한 모델이 새로운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퍼스트 라이드’는 해외 판매가 순조롭게 진행됐고, 이번 달엔 홍콩, 대만,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개봉하며 수익 창구를 넓혔다. 그리고 이광수의 신작 ‘나혼자 프린스’는 베트남 제작사와 협업해 한류의 힘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AI 기술의 활용도 돋보인다. 지난 10월 개봉한 한국 최초의 AI 장편 영화 ‘중간계’는 아쉬운 작품성으로 많은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AI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체험하게 했다. ‘중간계’는 AI 기술을 활용해 블루 스크린 작업 없이 CG를 입혔고, 차량 충돌 및 폭발 신의 촬영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신 기술을 이용해 효율성을 높이고 제작비를 대폭 줄일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준 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이미 영상 콘텐츠 시장에는 ‘소라’, ‘Veo’, ‘데이븐 AI’ 등 AI 기반 영상 생성 툴이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기술 장벽을 낮춰,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프로 수준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는 ‘데이븐 AI’의 창립자 데이빗 정의 말처럼 급속도로 성장 중인 AI 기술은 이후 영화계의 수익 모델을 바꾸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창작자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불황의 탈출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는 영화관도 움직여야 할 시간이 온 게 아닐까. 영화관이 변화 없이 관객이 줄어들어 힘들다고 호소하다면, 이 위기를 관객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것밖에 안된다.
이미 꽤 늦은 것 같지만, 더 늦지 않길 바란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메가박스, CJ CGV,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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