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이 나온 후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존립 위기 사태'로 볼 수 있다며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발언을 하자 중국 총영사가 "목을 베겠다"고 격렬하게 반응한데 이어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 및 유학 자제를 촉구하는 '한일령(限日令)'을 선포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일본 내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中, 자국민에 '일본 여행 자제' 이어 '일본 유학 재고' 촉구
다카이치 '대만' 발언에 "목 베겠다" 강력 반발
중국 교육부는 16일 '일본의 치안이 불안정하다'며 자국 학생들에게 일본 유학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당부했다.
현재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중국인은 지난해 12만 3000여 명으로 1년 전보다 8000명 정도 늘었다. 일본 내 해외 유학생 중 중국 출신이 가장 많다.
이에 앞서 중국 외교부는 14일 중국인들에게 일본으로 여행가는 것을 삼갈 것을 권고했다. 외교부는 밤 늦게 SNS로 '중국 국민은 당분간 일본에 가는 것을 피하고 동시에 일본에 이미 가 있는 중국 국민은 현지 치안 정세에 주의해서 자신을 지키도록 할 것을 엄중하게 주의 환기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그 이유로 "근래 일본 지도자들이 대만과 관련해 공연히 노골적으로 도발 발언을 하고 양국의 교류 분위기를 심하게 악화시켜 일본에 있는 중국 국민의 신체와 생명의 안전을 중대한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중국국제항공, 중국남방항공, 중국동방항공 등 중국 국유 항공사는 15일 일제히 무료로 일본행 항공권을 취소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에서 일본을 방문한 여행자는 748만 명으로 국가별로 가장 많다. 글로벌타임스는 일본 노무라증권 보고서를 인용해 "여행 자제 경고 발령으로 2조2000억엔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추정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이 일본 여행과 유학을 사실상 금지하는 '한일령'을 내린 것이다.
이는 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여겨진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의회에 출석해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해상 봉쇄를 풀기 위해 미군이 오면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무력을 행사하는 사태도 가정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나 지역이 공격받아 일본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존립위기 사태라고 판단되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내부적으로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존립위기 사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해 왔지만 공식적으로는 중국을 의식해 이를 언급하지 않아왔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전해지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지난 8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멋대로 끼어든 그 더러운 목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어 9일에는 "'대만 유사시가 일본 유사시다'라는 것은 일본의 일부 머리가 나쁜 정치인들이 선택하려는 죽음의 길"이라도 썼다.
13일에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 불장난을 하는 자는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 뒤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했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14일 "위험을 무릅쓴다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거나 취소하지 않자 '한일령'으로 압박 강도는 높인 것이라는 분석이다.
中 CCTV "반드시 정면 공격할 것…모든 교류 단절할 수도"
중국 언론들도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TV(CCTV)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 '위위안탄톈'은 15일 게시물에서 중국 정부가 최근 "모든 후과(나쁜 결과)는 일본이 져야 한다"와 "(중국이) 반드시 정면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며 "이런 표현들은 중국이 이미 실질적 반격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를 발신한다"고 썼다.
이 매체는 대(對)일본 제재와 양국 정부 간 교류 중단을 중국의 대응 수단으로 꼽았다.
'위위안탄톈'은 "중국은 대만 관련 문제에서 이미 충분한 반격 경험을 축적했으며, 외교부의 기존 제재 리스트에서 약 80%의 상황에 대만 문제가 포함돼있고, 이 가운데는 일본 정객도 적지 않다"면서 "필요하다면 중국은 언제든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매체는 '일본과의 경제·외교·군사 등 층위의 정부 간 교류 중단'을 대응책으로 제시하면서 "중국은 과거 '모든 후과'를 언급할 때 실제로 일부 수단을 채택(실시)한 바 있다"며 "알아야 할 것은 중국이 일본 최대 무역 파트너이고 적지 않은 일본 상품이 중국 수입에 '고도로 의존'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7일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겨냥해 "일본 우익세력의 지극히 잘못되고 위험한 역사관·질서관·전략관을 충분히 드러낸다"면서 "군국주의를 위한 초혼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한 달도 안 돼 일본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러한 발언을 했다면서 그 배후에는 평화헌법의 속박을 깨고 군사대국이 되려는 일본 우익세력의 위험한 기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인민일보는 "일본이 군국주의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을 우려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청일전쟁 이후 중국이 대만을 일본에 할양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복한 역사를 거론하고 "일본은 대만 문제에서 심각한 역사적 죄책이 있다"고 했다.
이어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 핵심이며, 레드라인이자 마지노선"이라며 대만 문제는 내정인 만큼 외세 간섭을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화통신도 시평을 통해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통제하려는 망상은 완전히 당랑거철이며 주제넘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최근 중국의 3번째 항공모함 푸젠함 취역과 지난 9월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 등을 거론하며 "중국 인민의 마지노선에 도전하려는 망상을 품는 자는 누구든 중국의 정면 공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日언론 "中, '시진핑 체면손상' 판단" "중일 갈등 몇년간 지속될 수도"
일본 언론은 이처럼 중일 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는 것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체면을 손상시켰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16일 시 주석과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회담한 직후 중국은 일본을 상대로 유화적 행동을 취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은 이달 3일 한국·일본 등에 대한 무비자 조치를 내년 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고, 5일에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 이후 금지했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2년여 만에 재개했다.
그런데 다카이치 총리가 7일 국회에서 일본 현직 총리로서는 최초로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시 주석 체면이 깎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입장에서 올해는 일제의 대만 점령 종료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는 해인데, 일본 총리가 대만과 관련해 민감한 발언을 내놓자 더 거세게 반발했을 수 있다고 요미우리가 해설했다.
일단 일본 정부는 갈등이 더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화 실마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전날 "입장차가 있는 만큼 양국 간 중층적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이치카와 게이이치 국가안전보장국장을 중국에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요미우리가 전했다.
아울러 일본은 오는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카이치 총리와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만남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전망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이번 갈등이 중국이 매우 중시하는 대만 문제와 얽혀 있다는 점에서 최악의 경우 몇 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여행 자제는 외교부가 취한 조치"라며 중국이 다른 나라와 대립했던 과거 사례를 보면 다른 정부 기관도 일본과 교류를 줄일 정책을 발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일본과 중국이 더 강경한 조처를 단행한다면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라고 불린 2012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관계 악화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일본이 센카쿠 열도 국유화를 선언하자 중국에서는 격렬한 반일 시위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닛케이는 중일 대립이 '다카이치 외교'의 실력을 판가름할 시금석이 될 수 있다면서 일본 방문 중국인 감소를 비롯한 경제 교류 정체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日 49% 대만 유사시 집단 자위권 행사 찬성…다카이치 지지율 5.5%P 올라
한편, 일본 대만 유사시에 집단 자위권 행사에 대한 일본 국민 여론은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도통신은 15∼16일 유권자 1천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대만 유사시 집단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48.8%는 찬성하고, 44.2%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끄는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 조사와 비교해 5.5%포인트 상승한 69.9%로 집계됐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16.5%였다.
다만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나가사키현에서 열린 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말이 지나쳐 일본과 중국 간 관계가 매우 엄중한 국면이 됐다"며 "상당히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를 지냈던 노다 대표는 "자위대의 최고 지휘관인 총리가 경솔하게 구체적인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불문율"이라고 덧붙였다.
입헌민주당 혼조 사토시 정무조사회장은 이날 TV 프로그램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안전보장 법제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집권 자민당 다무라 노리히사 정조회장 대행은 "배경을 끝까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총리도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러한 발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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