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
김모씨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신 뒤, 단지 내 지상주차장까지 약 150미터를 차량으로 이동했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12%로, 도로교통법상 면허 취소 기준(0.08% 이상)을 초과하는 수치였다.
경찰은 곧바로 김씨의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그는 행정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대법원은 2025년 10월, 심리불속행 기각을 통해 원심을 확정했다. 법리 오해가 없다는 이유였다.
핵심 쟁점: ‘도로’의 범위
이 사건의 쟁점은 단 하나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 도로교통법상 도로인가’이다.
도로교통법 제2조 제1호는 도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도로라 함은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도로, 길, 골목, 광장 또는 그 밖에 어떤 장소로서 자동차, 원동기장치자전거, 자전거 및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공개된 장소를 말한다."
즉, 이 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장소가 ‘일반 교통에 사용되고’ '공개된 장소’여야 한다. 대법원이 판단한 것은 바로 이 ‘공개성’ 요건이었다.
대법원은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 일반인의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며, 입주민이나 허가받은 외부인에 한해 접근 가능한 반(半)사적 공간이라고 봤다.
따라서 도로교통법이 적용되는 ‘도로’로 볼 수 없으며, 이 공간에서 이루어진 음주운전은 도로교통법상의 면허 취소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행정처분에 대한 엄격한 법 해석을 강조하는 판례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은 도로교통법의 해석뿐 아니라, 행정권 행사에 대한 법적 한계를 명확히 한 사례로 평가된다.
행정처분은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그 해석은 행정 편의나 사법적 감정이 아닌, 법률의 문언과 체계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실제로 2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에서의 음주운전을 이유로 한 면허 취소는 위법하다.”
골프장 내 카트사고, 운동장서 차량 사고 등
법과 현실의 동떨어진 입법적 사각지대는?
이 판결은 즉각적인 사회적 반응을 불러왔다.
음주운전에 무죄를 주는 판결이냐" "법 해석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과 동시에, "행정권의 자의적 확대를 견제한 판결"이라는 평가도 있다.
현재 아파트 단지는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주거형태다. 그 내부 공간에서 벌어지는 차량 운행은,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교통질서 유지와 안전 문제가 직결된다.
그러나 현재 법률 체계는 이러한 공간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며, 행정당국 역시 이를 선례와 관행에 의존해 해석해왔다. 이는 결국 법과 현실 간 괴리, 입법적 사각지대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이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면허취소를 둘러싼 행정소송을 넘어, 도로교통법이 포착하지 못하는 공간에서의 법 적용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다.
유사한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골프장 내 카트 사고,학교 운동장에서의 차량 운행 사고, 산업단지 내부 통로에서의 교통사고 등이 있다.
이러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장소에 대해, 앞으로 도로교통법 적용 여부를 보다 명확히 할 입법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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