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뜨거워 피하기만 했던 하늘이 푸르러졌다. 나는 이제야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주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또 다른 날에는 뭉게구름이 가득하다. 그때는 구름 속 재미난 닮은꼴을 찾아보며 소소한 행복을 마주한다. 그렇게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그 아래 서 있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문득 깨닫게 된다. 하늘은 늘 비슷해 보이지만, 그 푸른 공간 위에는 언제나 무한한 이야기들이 떠다닌다.
많은 것을 품은 하늘에서 찾아낸 칸딘스키의 ‘푸른 하늘’은 유독 특별하다. 파란 바탕 위를 둥둥 떠다니는 외계 생명체 같은 형상들은 음표처럼 흩어져 화면 위를 따라 흐른다. 점과 선, 색 덩어리들이 닿을 듯 말 듯 밀고 당기며 유영하며, 보는 이의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푸른 하늘’에서는 형태가 규칙을 벗어나고, 생각이 자유롭게 흘러 다닌다. 마치 구름이 바람 따라 모양을 바꾸듯, 칸딘스키의 하늘 또한 끊임없이 변주되는 상상의 무대인 셈이다.
‘푸른 하늘’의 배경은 이름 그대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이다. 그 위에는 새 같기도 하고 곤충이나 신화 속 동물 같기도 한 기묘한 형상들이 둥둥 떠 있다. 처음엔 알아보려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내 그런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림 속 형상들은 작가가 머릿속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풀어낸 결과물로,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그릴 때 느꼈던 감정에 더 가깝다. 화면을 가득 채운 파란빛은 깊이와 평온을 동시에 머금고, 화면 위의 형태들은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대신 마음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감정의 흐름과 닮아있다. 칸딘스키는 그 색과 형태가 만들어내는 울림에 잠시 귀 기울여 보라고 손짓한다. 그의 하늘은 그렇게, 푸른빛 속으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천천히 초대한다.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선과 색으로 초기 추상미술의 문을 연 인물이다. 그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 감정을 움직이듯, 회화 역시 색과 형태만으로 마음을 울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 아래 칸딘스키는 눈으로 듣는 음악 같은 회화를 추구했다. 화면 속 점과 선, 형태는 일정한 규칙 없이 흩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자연스러운 질서와 조화가 깃들어 있다. 그는 회화가 설명이 아닌 감각으로 이해되길 바고, 우리가 ‘보는’ 대신 ‘느끼는’ 예술을 꿈꾸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파란 대기의 선선한 온도와 그 위를 가르는 선들의 움직임이 전해진다. 작은 형상들은 음표처럼 흩어지며 시선을 따라 흐르고, 여백과 밀도의 간격이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서 그의 회화는 소리 없는 음악처럼 살아난다.
‘푸른 하늘’을 오래 바라볼수록, 점과 선, 그리고 유기적인 형상들은 어떤 해석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푸르른 공간 속에서 각자의 호흡과 속도로 의미를 만들어 간다. 보는 이의 시선과 감정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이 작품은 풍경을 재현하기보다 마음속 어딘가의 공간을 불러낸다. 아직 쓰이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종이처럼, ‘푸른 하늘’의 캔버스는 열린 세계로 남아 있다. 비어 있는 듯한 그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가장 넓게 열려 있는 무한한 이야기와 가능성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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