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양이 구조 및 보호 단체 ‘나비야 사랑해’에서 보호중인 ‘룽고’와 함께했다. 고양이 전문 수의사로서 꾸준히 행동심리를 탐구하고 세상에 알려왔다. 고양이 세계를 탐색하면서 당신의 삶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나
가치관보다 신체화가 돼버렸다(웃음). 내가 고양이스러워졌다는 뜻이다. 수의사는 주로 보는 동물의 성향을 닮아간다. 예전에는 활달하고 사람 만나는 데 거리낌이 없었는데, 지금은 집 생활이 중요하고 낯선 만남은 에너지 소모가 크다. 직관적 성향도 강해졌다. 안 좋은 예측을 많이 하게 되는데, 고양이가 생존 본능 때문에 걱정과 근심이 많다.
‘고양이가 걱정과 근심이 많다’는 표현이 귀엽다
고양이들은 항상 호기심과 걱정 사이를 시소처럼 왔다갔다한다. 호기심이 넘치면 신나서 보다가도 조금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도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여 다시 숨거나 안전한 곳으로 피한다.
유튜브 채널 〈미야옹철의 냥냥펀치〉에서도 공개했지만 현재 반려 가족 ‘사모님’과 ‘애기씨’와 살고 있다
EBS 〈고양이를 부탁해〉를 진행하면서 인천 문학동에서 21마리 고양이의 유기 사연을 접했고, 전부 입양 보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 ‘프로듀스 제로’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사모님’을 입양했다. 같은 해 병원에 구조돼 온 ‘애기씨’는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식도 튜브, 폐 농양 세척 등 한 달 치료 후 회복했고, 사람에게 호의적이라 더 정이 가더라. 구조자는 이미 열 마리 이상 고양이를 키우던 분이라 “다른 집은 못 믿겠는데, 원장님이면 믿는다”며 나에게 입양을 보냈다.
세상에는 다양한 고양이가 존재한다. 고양이의 사회화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개는 오래 가축화돼 인간과의 관계성이 확실한 품종들이 사람 근처에 살지만, 고양이는 다수가 야생 출신이다. 어떤 개체는 인간과의 관계 형성이 거의 사라져 있고, 어떤 개체는 분리불안이 생길 만큼 종속적이다. 보편적인 반려 고양이는 일정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람을 필요로 하는 애착이 있지만, 길에서 삶이 고착화된 개체는 인간과의 관계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런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는 건 경우에 따라 반려가 아니라 ‘납치’에 가깝다. 다만, 아프거나 노령 등 도움이 필요한 경우엔 예외다.
유기묘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도 있겠다
문제 행동이나 질병이 있을 거라는 편견이다. 실제로 보호소에는 사람과의 관계성도 좋고 건강한 친구들이 더 많다. 특히 성묘는 입양을 꺼려 오래 체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초보 집사일수록 성묘 입양의 실패 확률이 낮다. 성묘는 성향이 정해진 상태라 궁합 예측이 가능한 반면 ‘아깽이’는 향후 성격을 알 수 없고 ‘냥춘기’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파괴나 놀이공격성이 생길 수도 있다. 이때 시간을 많이 들여 교육해야 한다. 사회화 시기에 시간이 부족하면 더 내향적이거나 예민해질 수 있다.
개는 다른 존재와 함께 있으려는 동물인 반면, 고양이는 독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들은 어떤 차이를 보일까
개와 인간은 ‘자식과 부모’에 가깝다. 아주 어린 유아와 부모. 종속과 의존 관계, 거기서 유대와 사랑이 싹튼다. 반면 고양이와 인간은 ‘연인’에 가깝다. 평등, 어른들의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밀당’도 있고, 익숙하다가도 틈이 생긴다.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고, 약자는 항상 인간이다(웃음). 개에 비해 고양이의 사랑은 차원이 한 단계 높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주는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존중과 합의에서 유지되는 관계이니까.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존속’보다 ‘동거’라는 표현이 맞을까
룸메이트에 가깝다. 내 첫째 고양이에게 느꼈던 가장 큰 매력과 사랑의 핵심 요소는 이 친구가 내 눈앞에 없지만, 벽 너머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것이다. 옆에서 필요할 때 곁을 내주는 순간도 좋지만, 이 친구가 마냥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걸 떠올리기만 해도 감정이 벅차오른다. 반면 개는 완전히 다른 감정인 것 같다. 나도 부모가 돼 보니 알겠더라. 개에게 쏟는 애정은 일방적으로 챙겨줘야 하고 자식을 키우는 책임감에 가깝다는 걸.
개는 조건 없는 사랑, 고양이는 조건 있는 존중이라는 말도 있다. 동의하나
동의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기 모습을 포기하지 않는다. 기본 개성대로 생활하고, 굳이 맞추려 하지 않는다. 상대가 안전하고 편안하면 관계 형성이 쉬울 뿐.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인간은 짝사랑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고양이가 정말 싫어하는 인간의 행동이 궁금하다
속도를 인간 주도로 좁히는 것. 고양이는 안전과 사회적 거리 확보가 중요하다. 신뢰가 쌓이기 전에 그 거리를 깨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고양이의 속도에 사람이 맞추는 것이 관계 형성에 있어서 가장 빠른 방법이다. 고양이와 친해진 후에도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침범하면 스트레스가 쌓여 소변 같은 문제 행동으로 이어진다. 특히 강아지를 잘 길렀던 보호자가 처음 고양이를 기를 때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로 접근하면 충돌이 생긴다.
개는 인간이 되고 싶어하고, 고양이는 신이 되고 싶어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개는 모르겠다(웃음). 고양이는 항상 고양이일 뿐인데 옆에 있는 인간들이 그냥 추앙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개의 충성심과 고양이의 자율성, 두 극단의 관계에서 인간은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솔직히 개에게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웃음). 왜냐하면 이미 인간의 모습과 너무 비슷하니까. 배운다는 건 다른 것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지 않나. 고양이에게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응, 그래. 나는 난데 뭐 어쩌라고’ 하는 성향이다. 스스로를 잃지 않는 모습이 배울 부분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나’고,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도 ‘나’이며, 내가 혼자 있고 싶은 것도 ‘나’이고, 네 옆에 붙어 있고 싶은 것도 ‘나’라는 것. ‘그 모든 것에서 최대한 내 모습을 보여줄 거야’라는 게 인간에게도 필요한 모습이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꽤 단순한 존재이지만, 마음을 내줄 듯 말 듯 ‘밀당’할 때면 또 복잡한 존재가 되는 것이 고양이다. 이들을 진료하고 치료하며 가장 어려웠던 케이스는
현재 주로 행동학 진료를 맡고 있는데, 행동학은 정신건강 의학과 비슷하다. 합사 실패로 5년째 각 방이던 두 고양이와 두 보호자가 온 적 있다. 한 마리는 너무 일찍 어미와 이별해서 정서적 결핍이 심했고 충동 조절이 안 됐다. 자기 꼬리와 발바닥을 축축해질 때까지 핥는 등 불안과 충동 조절 문제를 앓고 있었다. 정신과 약물과 행동 교정을 1년간 병행했고, 어느 날 한 이불 아래 함께 자는 영상을 보호자가 보내왔더라. 상황이 개선돼 보호자와 고양이 모두의 스트레스가 줄어든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수의사와 가장 비슷한 과는 소아과다.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말 못하고, 보호자의 설명과 비언어적 신호에 의존해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치료는 보호자의 판단에 달리기도 해, 쉽게 소진되고 정신적으로 지치기 쉽다.
이처럼 보호자가 끝까지 믿고 함께 치료해서 이겨내는 긍정적인 사례도 있지만, 불법 번식장이나 펫 숍, 상품화, 도구로서 학대받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유기동물이 계속 발생하고, 그 수가 많다는 점이다. 정책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인식의 문제에 더 가깝다. 너무 쉽게 입양하거나 물건 버리듯 파양하고, 물건처럼 다루는 인식을 개선하는 게 최우선이다. 지금도 불법 번식장에 대한 법령은 존재하지만 최악의 상태가 아니면 처벌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허가 기준이 고양이와 개가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유럽처럼 펫 숍을 없애거나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인식 변화도 당연하지만 제도 개선 중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등록제가 100% 정착돼야 한다. 개뿐 아니라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전수 관리가 가능하다. 입양 단계부터 등록을 의무화해야 ‘책임 입양’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는다. 또 불법 거래나 번식장 같은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타이트한 단속이 필요하다. 단순히 법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과태료를 높이는 것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교육이 우선이다.
‘좋은 보호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
당연한 말이지만 책임감 있는 보호자다. 나에게는 일부분이지만 반려동물에게 나는 삶의 전부다. 평균 15년 타임라인을 미리 그려봐야 한다. 노화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 가능성까지 포함해 시간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귀엽고 건강한 순간만 생각하면 반드시 한계가 온다. 그래서 입양을 결심했다면, 한 번 더 고려해 보라고 말한다.
동물과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동물과 함께 늙어간다는 표현은 조금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네 배 더 빨리 늙는다. 나는 아직 늙지 않았는데, 내 옆에 있는 친구는 정말 빠른 노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당장 우리 집 아이들도 내 나이를 초월했더라. 함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잘 떠올려보길 바란다. 이 친구들은 우리의 1년이 4년씩 압축돼서 훅훅 지나가고 있고, 함께 있는 시간도 그만큼 짧은 거니까 매일매일에 충실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길. 밀도 있게 채워야 한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는
동물과 사람의 큰 구분이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밀접한 관계성 안에서 생존하고 있는 부분이라 인간은 인간이고 동물은 동물이라고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냥 지구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이고, 인간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조화롭고, 어떻게 하면 잘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걸 잊고 살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시라.
고양이가 지구를 정복하는 날이 올까
이미 정복했을 거다(웃음).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반려 고양이 숫자가 5억 마리였는데, 워낙 급속도로 늘어서.
지구에 존재하는 고양이들에게 한마디한다면
그냥 지금처럼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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