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일타 강사' 엘르가 1940년대에 발표한 뷰티의 47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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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일타 강사' 엘르가 1940년대에 발표한 뷰티의 47단계

엘르 2025-11-10 11:32:00 신고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한 여성이 있다. 어떤 피부 톤을 갖고 있고, 어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연출했을지 상상해 보자. 그리고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의 장점을 어떻게 활용하고 단점을 어떻게 포용하는지,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해석해 제품을 선택하고, 자신의 몸을 케어하는지 상상해 보자.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 1945년 11월 〈엘르〉 프랑스 창간호가 발행되던 시기의 여성을 떠올려보자. 그 시절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슈퍼모델 베티나 그라치아니(Bettina Graziani)처럼 우아하고 절제된 모습이었다면, 오늘날은 애슐리 그레이엄(Ashley Graham)이라는 인물로 치환될 수 있을 것이다. 존재 자체로 당당하게 빛나며, 압도적인 아우라를 뽐내는!


1945년과 2025년, 80년이란 시간 동안 여성을 주인공으로 크고 작은 이야기가 전개됐다. 좀 더 사회문화적 언어로 정리하면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권한 향상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고 뷰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사사롭고 가벼운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뷰티가 단순히 외모 가꾸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엘르〉는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뷰티란 여성들이 스스로 삶을 창조하고 운명을 주도하며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엘르〉는 4세대에 걸쳐 여성의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이며 집단적인 역사를 기록해 왔다. 전후 시대에 헤어스타일을 정성껏 가꾼 주부부터 2020년대의 자유로운 여성에 이르기까지.


〈엘르〉 뷰티 에디터들도 여성들이 경직된 사회 시선과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변화의 여정을 함께해 왔다. 〈엘르〉 프랑스 뷰티 편집장 엘리자베스 마르토렐(Elisabeth Martorell)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뷰티에 대해 즐겁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독자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사명을 잃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엘르〉가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여성상’에 대한 개념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유를 사랑하고 선택에 늘 당당하며, 스타일과 내면을 분리하지 않고 때로는 모순되는 욕망까지 받아들이면서 언제나 해방감을 추구하는 여성. 그렇다면 그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엘르〉 커버를 살펴보면 그 힌트가 드러난다.


 “우리 모두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어요(Vous pouvez toutes rester jeunes).” 장 슈발리에 (Jean Chevalier)가 촬영한 1948년 5월 2일 〈엘르〉 프랑스 119호 표지.

“우리 모두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어요(Vous pouvez toutes rester jeunes).” 장 슈발리에 (Jean Chevalier)가 촬영한 1948년 5월 2일 〈엘르〉 프랑스 119호 표지.

장 슈발리에의 카메라 앞에 선 미국 모델 진 패칫(Jean Patchett)이 1950년 3월 223호 〈엘르〉 프랑스 커버를 장식했다.

장 슈발리에의 카메라 앞에 선 미국 모델 진 패칫(Jean Patchett)이 1950년 3월 223호 〈엘르〉 프랑스 커버를 장식했다.

1948년 5월 14일 발행된 <엘르> 프랑스 표지. 크리스챤 디올 드레스를 입은 모델 리사 폰사그리브스(Lisa Fonssagrives)를 장 슈발리에가 촬영했다.

1948년 5월 14일 발행된 <엘르> 프랑스 표지. 크리스챤 디올 드레스를 입은 모델 리사 폰사그리브스(Lisa Fonssagrives)를 장 슈발리에가 촬영했다.


1945-1950

〈엘르〉 창간호는 1945년에 발행됐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여성들은 살아가는 것, 투표하는 것 그리고 아름다움을 열망했다. 비록 몸은 주방에 있지만 할리우드 스타의 세련된 룩을 꿈꿨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을 그 당시 아름다움을 가꾼다는 건 엘리트만의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르〉 매거진을 창립한 헬렌 라자레프(He′le‵ne Lazareff)에게 아름다움이란 훨씬 더 자유롭고 유쾌하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헬렌 라자레프는 창간과 동시에 이렇게 선언하며 〈엘르〉의 방향성을 잡았다. “나에게 어울리는 걸 선택하세요. 맹인이 안내견을 따르듯 패션을 따르지 마세요. 이것이 바로 새로운 우아함입니다.”


〈엘르〉는 당대 아이콘들의 스타일을 해석하고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친근하게 설명했는데, 1945년에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긴 걸 보면 ‘뷰티 일타 강사’가 따로 없다. “가발은 잊으세요. 헤어를 자연스럽게 중간 길이로 늘어뜨리되 정성껏 빗어 윤기가 나도록 가꾸세요. 메이크업은 연하게, 하지만 결점 없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1947년에는 ‘너무 뚱뚱하지도, 너무 마르지도 않게 보이는 방법’, 1948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갖는 법’ 등의 기사가 등장했고, 이후에도 전문성과 위트를 겸비한 지식과 조언이 이어졌다. ‘뷰티의 47단계: 몸을 깨끗이 씻고, 셰이빙하고, 보습하는 법. 팔꿈치와 무릎도 잊지 말 것!’ 같은 주제를 통해 기본적인 뷰티 루틴을 끊임없이 상기시켰고, ‘요란한 메이크업은 이제 안녕: 스킨, 립, 아이 등 세 가지 포인트만 기억하세요’처럼 절제 미학도 강조했다.


노화를 걱정하는 독자들에게 〈엘르〉는 일찌감치 이렇게 격려했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1947년에는 여성의 맨몸이 커버에 처음으로 등장해 충격과 기쁨을 동시에 안겨주었고, 비키니의 등장과 함께 보디 케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창간 이후 무수히 많은 테마가 등장했지만, 그 중심에는 ‘우리 모두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었다.


장-피에르 보노트(Jean- Pierre Bonnotte)가 촬영한 뷰티 아이콘 브리짓 바르도. 1967년 6월 29일 발행된 〈엘르〉 프랑스 1123호 표지.

장-피에르 보노트(Jean- Pierre Bonnotte)가 촬영한 뷰티 아이콘 브리짓 바르도. 1967년 6월 29일 발행된 〈엘르〉 프랑스 1123호 표지.


1950-1960

‘여성의 첫 번째 역할은 어머니’라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던 1950년대. 그럼에도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은 변함없이 존재했다. 베티나 그라치아니, 소피 리트바크(Sophie Litvak), 실비 젤랭(Sylvie Gélin) 등 톱 모델들이 등장하며 〈엘르〉는 이들과 더 많은 일을 전개했다. 한편 1951년 〈엘르〉 프랑스 편집장이었던 프랑수아즈 지루(Françoise Giroud)는 충격적인 기사를 발표했다. ‘프랑스는 청결한가?’라는 타이틀 아래 당시 프랑스 여성의 30%가 비누나 치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위생에 대한 내용이었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 사회에서 오랫동안 위생은 허영심과 동일시됐습니다. 허영을 부채질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위생 자체를 소홀하게 여겼죠.” 프랑수아즈 지루는 ‘팔 윗부분뿐 아니라 팔꿈치 아래도 깨끗이 씻으세요’라는, 지금 시대에서는 ‘웃프지만’ 당시에는 매우 ‘실용적인’ 조언을 제안했다.


〈엘르〉만의 낙천주의와 유쾌함은 1951년 새롭게 등장한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를 통해 명확히 가시화됐다. 동시에 〈엘르〉는 이때부터 ‘가성비’ 넘치는 뷰티 팁과 간소화한 루틴을 꾸준히 주창해 왔고, 코 성형수술에 대한 사실적 보도를 싣는 등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당시엔 성형수술의 공론화를 터부시했기 때문. 언제나 그렇듯 〈엘르〉는 아방가르드였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청춘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예예(Yé-yé) 시대,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 시대의 팝 아이돌처럼 찰랑이는 헤어와 햇볕에 그을린 피부, 날씬한 몸매를 많은 여성이 꿈꿨다. 〈엘르〉는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머니와 딸들 모두에게 피부가 칙칙해 보이지 않고 건강하게 태닝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아이라이너와 파우더 등의 제품이 인기를 구가했고, 이들에 대한 칭찬에 많은 지면이 할애됐다. 당시 단골로 등장했던 대표 아이템으로 엘리자베스 아덴의 롱래시 마스카라, 로레알의 에르네뜨 헤어스프레이 등을 꼽을 수 있다.


1967년에는 트위기(Twiggy)가 〈엘르〉 커버 모델로 등장했고,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çoise Hardy), 제인 버킨(Jane Birkin), 진 세버그(Jean Seberg) 등이 새로운 여성의 이미지로 등장했다. 1966년에는 모델 니콜 드 라마주(Nicole de Lamargé)를 통해 ‘아름다움이란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임을 주창했고, 1967년에는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가 ‘가장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여성’으로 꼽혔다. 미니스커트의 등장과 함께 다리 관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1968년 5월 파리에서 일어난 시위를 계기로 아름다움에 대한 반항적인 바람이 불기도 했다. “머리를 기를지, 짧게 자를지 누구에게도 허락을 구하지 마세요.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세요.” 1969년에는 사진기자가 실제로 수술실에 들어가 성형수술의 비하인드 신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브 생 로랑과 엠마누엘 웅가로 같은 디자이너들은 “나는 여성들이 자신의 다리나 무릎, 엉덩이, 가슴을 부끄러워하는 데 지쳤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자기 수용이 주된 가치로 자리 잡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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