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외수 작가의 부인, 故 전영자 여사가 향년 72세로 별세하며 44년간 이어진 복잡다단한 삶의 궤적을 마무리했다. 이외수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6개월 만이다. 전영자 여사의 생애는 희생과 독립, 그리고 연민이라는 근원적인 가치 사이를 오가며 현대 사회에서 배우자의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겼다.
전영순 여사는 오랜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의 공적 활동을 지원하며 극심한 소진을 겪었다.
그는 "남편을 도와 하루에도 30명씩 손님을 맞는 삶에 지쳐버렸다"고 토로했으며 "수차례 바람 피워 이혼 생각 했다"고 고백하며 관계의 균열(이혼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이외수 작가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는 심경과 함께 , 이혼 대신 졸혼(卒婚)을 택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졸혼을 선택하며 그녀는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찾고 싶었다"는 간절한 소망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이외수 작가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섰다. 그는 이 작가를 "내 인생의 스승"이라 칭하며, "나를 달구고 깨뜨리고 부쉈던 사람" 이라고 고백했으나 "그를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고 선을 그었다. 이는 고통마저도 자아를 단련시킨 과정으로 승화시킨 주체적 해석이었다.
그러나 독립의 여정은 2020년 이외수 작가가 뇌출혈로 쓰러지며 예기치 않은 전환점을 맞았다. 전영순 여사는 과거의 모든 고통과 갈등을 초월하며 주저 없이 졸혼을 종료하고 남편 곁으로 돌아왔다. 이 결정의 핵심 동기는 "그가 불쌍하다"는 단 한마디였다. 병간호는 2022년 이 작가가 별세할 때까지 이어졌고, 그녀는 이 헌신적인 역할을 "나의 천직"이라 정의했다. 이는 개인의 해방을 넘어선 윤리적 책임과 근원적 연민의 발현이었다.
남편 사후 춘천 자택에서 홀로 지낸 그녀는 "평생의 반려자가 떠난 뒤 많이 외로워하셨다"는 유족의 증언처럼 , 최종적인 임무를 완수한 후 깊은 공백과 싸워야 했다. 전영자 여사는 이제 유명 작가의 그림자가 아닌, 자기 해방을 꿈꾸었으나 결국 연민을 통해 관계의 최종적인 의미를 완성한 강인한 인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유족으로는 2남 이한얼·이진얼 씨 등이 있다. 발인은 10일 오전 6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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