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바다의 왕이라 불리던 백상아리가 새로운 공포의 존재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그 상대는 바로 범고래다.
남아프리카 해안에서 백상아리를 몰아냈던 범고래들이 이번에는 멕시코 캘리포니아만에서 또 한 번 사냥의 능력을 입증했다.
멕시코 해양생물학자 에릭 이게라 리바스(Erick Higuera Rivas)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팀은 범고래가 '백상아리의 간'만을 노리는 정교한 사냥 전략을 구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실렸다.
◆ 백상아리를 무력화시키는 완벽한 전략
관찰된 범고래 무리는 수컷 모크테수마가 이끄는 집단으로, 과거 고래상어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연구팀은 이들이 단순히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상어의 생리적 약점을 이용해 완벽하게 제압한다고 밝혔다.
백상아리는 몸이 뒤집히면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마비되는 '강직성 불응' 상태에 빠진다. 범고래들은 이 반응을 이용해 상어를 뒤집은 뒤, 단 몇 분 만에 거대한 간을 꺼내 먹는다. 이 간은 지방과 오일이 풍부해 에너지가 높은 영양원으로, 범고래 무리 전체가 나누어 먹는다.
사냥은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 촬영된 드론 영상과 수중 카메라를 통해 확인됐다. 매번 다섯 마리의 범고래가 협력했고, 사냥 후 새끼들에게 간을 나누어주는 장면도 포착됐다.
연구팀은 "이 행동은 범고래의 고도의 지능과 사회적 학습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사냥 기술이 세대를 거쳐 전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범고래 한 쌍에 무너진 해양 질서
범고래의 등장은 생태계의 균형을 바꾸고 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해안에서는 범고래 두 마리의 출현 이후, 백상아리 무리가 수개월간 서식지를 떠난 사례가 보고됐다.
이번 멕시코 연안의 사례도 비슷하다. 범고래가 나타나자 백상아리들이 주요 먹이터를 버리고 사라진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성체 백상아리는 범고래를 감지하면 즉시 피하지만, 어린 개체는 위험을 학습하지 못해 표적이 되기 쉽다. 상대적으로 저항이 약한 어린 상어를 노림으로써, 범고래는 부상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영양분을 얻는 효율적인 사냥 전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멕시코 인터디서플리너리 해양과학센터의 프란체스카 판칼디는 "범고래의 이러한 먹이 전략은 지역 해양 생태계의 구조를 바꾸는 중요한 신호"라며 "이들의 주요 서식지와 행동 패턴을 파악해 보호 구역과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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