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도시의 네온사인과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사운드, 이것이 바로 시티팝이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꽃핀 ‘시티팝’은 고도성장기와 버블경제 직전의 도시적 여유를 음악으로 담아낸 독특한 문화적 산물이다. 당시 일본 대도시권에서는 자동차 보급이 늘고 FM 라디오와 카세트, 워크맨 같은 개인 청취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도시적 삶’을 반영하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서구의 펑크, 디스코, 재즈 퓨전과 AOR(어덜트 오리엔티드 록, Adult-oriented rock) 같은 장르가 유입되면서 일본어 가사와 도시적 감각이 결합되었고,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을 활용한 세련된 편곡은 당시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소리로 구현했다.
시티팝은 일본 내 기존 가요나 포크, 록과는 달리, 도시적 이미지와 여유를 강조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대표 아티스트인 야마시타 타츠로와 마리야 타케우치는 장르의 표본으로 꼽히며, 이들의 음악은 자동차 드라이브, 해변, 밤의 도시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와 부드러운 코드 진행, 세련된 재즈적 편곡이 특징이다. 시티팝의 미학은 음악에만 그치지 않고 앨범 커버와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히로시 나가이가 작업한 앨범 아트워크는 장르의 시각적 정체성을 대표한다.
80년대 일본 경제 버블 직전까지 시티팝은 대중적으로 널리 수용되었으나, 버블 붕괴 이후에는 점차 구식으로 여겨지면서 쇠퇴한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유튜브와 스트리밍 알고리즘을 통해 다시 재조명되며, 해외 팬덤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다. 특히 서구의 프로듀서와 DJ들은 시티팝의 사운드를 샘플링하며, 이를 베이퍼웨이브나 퓨처펑크 같은 하위 문화로 확장시켰다. 시티팝은 이제 단순한 80년대 일본 팝이 아니라 세대와 국가를 넘어선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는 시티팝이라는 장르명이 널리 쓰이지는 않았지만, 80~90년대의 팝에서도 도시적 여유를 담은 음악이 존재했다. 김현철과 같은 아티스트는 한국형 시티팝의 조상으로 불리며, 최근에는 레트로와 뉴트로 열풍과 맞물려 시티팝 스타일의 곡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와 2020년 발매된 트와이스의 'Say something', 선미의 '보라빛밤'처럼, 현대 한국 음악은 도시적 감성과 드라이브용 사운드를 결합하여 시티팝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한국 시티팝을 주제로 한 컴필레이션 앨범과 플레이리스트도 늘어나면서, 장르는 스타일과 감성으로서 재해석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은, 시티팝 감성을 장르로 명확히 표방한 독립 및 컴필레이션 앨범의 등장이다. 일부 앨범은 아예 'Korean City Pop'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한국형 시티팝을 제시하고 있으며, 유키카(YUKIKA) 같은 아티스트는 일본과 한국 80~90년대 음원을 현대적 프로덕션으로 재해석해 국내외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인디씬에서도 시티팝 스타일의 곡과 EP가 꾸준히 발매되며, 장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감성적 코드와 음악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 시티팝은 일본 장르의 차용이 아니라, 한국 도시의 밤과 풍경을 음악에 담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강변 드라이브, 홍대 거리, 서울의 야경과 같은 한국적 요소가 시티팝 스타일의 사운드와 결합되면서 ‘서울형 시티팝’이라는 개념이 점차 구체화된다. 이는 장르가 가진 복고적 매력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하는 동시에, 대중과 마니아층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장르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시티팝은 도시화와 소비문화, 여가문화가 음악 속에 투영되었으며, 과거의 시대정신은 현재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재생산되어 새로운 세대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국경을 넘어선 공감대는 일본어 가사나 일본 도시문화적 맥락을 넘어, 도시 속 여유라는 이미지 자체로 확장된다. 국내에서도 현대적 도시생활과 레트로 감성을 결합한 음악이 꾸준히 등장하며, 시티팝은 복고가 아니라 오늘날의 도시 감성을 담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향후 국내에서 시티팝의 지속적인 성장은 몇 가지 과제를 동반한다. 장르 용어의 명확성을 둘러싼 논쟁이 존재하며, 일본 시티팝의 문법을 차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서울의 밤, 한강변 드라이브, 홍대 거리 등 한국적 도시 감성을 음악으로 녹여내는 시도가 필요하다. 동시에 레트로 열풍 속에서 마니아층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될 때, 시티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한국 음악계의 지속적인 흐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국 내 시티팝은 다양한 층위에서 확산되고 있다. 컴필레이션 앨범과 플레이리스트, 독립 아티스트들의 개성 있는 시티팝 곡, 그리고 팬덤 기반의 재발견까지, 장르는 단순한 장르 분류를 넘어 음악적·문화적 경험을 총체적으로 제공한다. 도시의 밤과 레트로 무드, 그리고 감각적인 사운드는 한국 음악 환경 안에서도 충분히 설 자리를 마련 중이다. 차 안에서, 밤의 도로 위에서, 혹은 헤드폰을 끼고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다면, 우리는 단순한 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리듬과 여유, 그리고 흘러간 시간의 향수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티팝은 도시, 여유, 레트로, 기술이 결합된 사운드이자 문화적 경험으로, 일본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음악 문화 속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한국형 시티팝은 과거 일본의 도시적 감성을 차용하면서도 한국의 도시적 라이프스타일과 레트로 감각을 결합해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하나의 음악적 장르를 넘어, 도시와 시간, 문화적 경험을 연결하는 새로운 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새로운 문화, 그리고 사람. ‘뉴컬에세이’는 예술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그 여운을 글로 옮기는 코너입니다. 공연, 전시,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현상속에서 ‘지금 이 시대의 감성’을 발견합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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