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대 특정 시점에 일종의 도약이 이뤄진 것은 영국 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이뤄지는 기술의 진보 이외에도 애덤 스미스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는 근대 사회의 생산력 구조를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봉건제와 중상주의적 통제정책을 비판하고 자유주의의 합리성을 논증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이 나올 때까지 영국의 정치권을 지배한 사상은 중상주의였다. 중상주의는 높은 관세를통해 수입은 적게 하고 수출을 많이 하는 정책으로 무엇보다 독점
권이 가장 중요했다. 이에 따라 무력을 통해서라도 독점권을 차지해야 했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 이웃국가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애덤 스미스는 분업과 자유무역을 강조함으로써전쟁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국가의 부가 증대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아냈다. 그의 발명은 마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즉각적으로 영국의 정치인과 경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정책에 반영됐고(프랑스와 관세 인하 협정을 체결함) 경제인들이 금융에서 대출을 일으켜 토지개량사업과 신규 공장에 투자하게 만들어 일종의 방아쇠를 당겼다. 영국은 『국부론』으로 인해 산업혁명의 개막을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생산성을 배경으로 하여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왜’ 필요한가와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문제들은 조금만 고민해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이 중 중요한 것은 ‘왜’라는 이유다. ‘무엇을’ ‘어떻게’는 ‘왜’가 결정되고 나면 후행적으로 일어나는경우가 허다하다. 이로써 영국은 그들의 머리를 옥죄던 중세적 경제관에서 벗어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쌓게됐다.
1780년대부터 한 세기에 이르는 1873년 대불황 이전까지 면직 산업을 비롯한 영국의 공업생산력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세계 최초의 산업 도시인 맨체스터의 면직물은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이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대륙에 큰 자극을 주었다.
참고로 유럽에서 1870년 전까지 선진국은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뿐이었다.(산업적 전통과 함께 강한 문화적 유산을 지닌) 이런 선진 프랑스마저 대혁명에 뒤이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군사 분야와 일부 지역의 소규모 공장을 제외하고는 공업화가 진전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프랑스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된 것은 1830년 7월 혁명 이후의 일이다.
“프랑스는 지리적으로 영국과 가까웠기 때문에 영국의 기업가, 기술자, 정비공이 이주해 와서 이로부터 직접적인 혜택을 보았다.(…중략…) 하지만 석탄채굴이 쉽지 않아 증기력 개발은 더디 진행됐다.”
독일은 이보다 더 뒤졌다. 정치적 분열과 사회·경제적 후진성으로 인해 독일은 1830년대에 가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프로이센은 독일 내 소국들과 경제적으로 연대하여 세력을 확장하고자 관세동맹을 맺었다. 이 시기 방직업에서 기계가 도입되고 1840년대 철도혁명으로 투자가 활성화되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됐으나 본격적인 산업화는 1850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은 산업혁명기에 자유경쟁에 의한 도태가 일어났다. 반면 독일은 관료 주도형인 ‘위로부터 산업화’를 추진하여 효율적인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
여기에 실험과 연구를 하는 근대 대학(대학 2.0)이 독일에서 최초로 시작됐다. 그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축적되고 파급력이 커지면서 선발국인 영국을 앞지르게 됐다.
미국은 1793년 조면기(목화씨를 빼내는 기계)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에 일찍 공헌했다. 방적 분야의 기계화는 1820년대에 민간 기업가들이 주도했으나 본격적인 산업화는 1850년대 독일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독일처럼 출발은 비록 늦었지만 높은 교육열과 뛰어난 산업적 응용력으로 인해 산업화 속도가 매우빨랐다. 이로써 가속화된 기술 진보를 통한 2차 산업혁명은 1870년대부터 독일과 미국이 주도하게 된다. 기타 지역, 특히 스웨덴은 이보다 30년 뒤진 1860년대에 시작해 1880년대에 급격한 속도로 중공업과 경공업이 모두 발전했다. 러시아는 1890년대에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촉진했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복지와 교육, 생활 수준,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북유럽의 대표주자인 스웨덴의 산업화가 주변국들에 비해 늦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일찍이 19세기 초중반까지 스웨덴은 빈곤이 만연하여 많은 자국민이 해외로 이주하는 가난한 농업국가였다. 1848년 기근 이후 혹독한 기후와 흉작 때문에 185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인구의 4분의 1인 130만 명의 농민들이 미국으로 단체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이들은 노르웨이 등 노르딕 국가 출신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 최북단의 추운 지역인 미네소타 등으로 주로 이주했다. 미네소타 주는 유럽계 중에서도 북유럽 이민자들이 제일 많은 주여서 이를 연고로 하는 내셔널풋볼리그NFL팀 이름이 미네소타 ‘바이킹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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