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그 유명한 ‘파친코’를 이제서야 봤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이유는,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막상 엄마와 함께 보니 괜찮았다. 물론 아픈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주인공 선자는 누구보다 강하고 멋지게 삶을 살아낸다.
이야기도, 영상도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음악이었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고 ‘이 음악은 누가 했을까?’ 하고 일부러 찾아보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예외였다. 검색해서 작곡가의 이름을 확인하고, 그의 인터뷰까지 찾아 읽었다.
그의 이름은 니코 뮬리(Nico Muhly). 미국의 현대 클래식 작곡가로, 영화음악뿐 아니라 실내악·관현악·오페라·발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미 유명하지만, 동시에 30세 미만의 젊은 팬층이 두터운 ‘힙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파친코’의 음악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이었다. 영상 음악이 어려운 이유는,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이 단일한 감정만을 지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고, 때로는 연출자의 의도가 명확한 감정보다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그런 모든 부분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감정이 드러나는 인물의 장면뿐 아니라, 풍경이 비치는 순간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들에서 이미지가 표현하지 못하는 공기의 흐름과 분위기를 음악이 대신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작품에 다가가는지, 또 얼마나 많이 고민하는지 알 수 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그는 제작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동아시아 음악을 원한다면,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작자 역시 그런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니코 뮬리가 음악 작업을 시작하며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캐릭터’였다고 한다.
나는 그와 제작사가 모두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파친코’의 핵심은 ‘동아시아’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역사를 지나온 모든 세대와 인종의 삶을 포괄하는 것이다. 만약 강한 동양적 악기 톤으로 음악의 색을 규정했다면, 오히려 전 세계 관객이 이 이야기 속 보편성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 시장을 향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이 결정은 전략적으로도 탁월했다.
‘캐릭터에 집중해서 작업했다는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래의 인터뷰 내용이 좋은 예시다.
“Instead of themes that belonged to time periods, or sound worlds that belonged to time periods, there needed to be a sense of genetic connection between the material.”
그는 작품이 시대별로 진행되는 점에서 악기나 음색의 차이보다 인물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유전자적 연결성’을 음악의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고 한다. 즉 시대마다 인물이 바뀌어도 감정이나 관계의 흐름이 유지되도록 음악적으로 통일감 혹은 연속성이 있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오는 주인공들에게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젊은 시절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지만, 강인한 모습을 보였던 선자가 나이가 들어 손자인 솔로몬과 함께 있을 때도 은은하게 그런 분위기가 풍기는 것은 대본이나 배우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음악의 역할도 크다.
특히 4세대에 걸친 이야기인 만큼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며 어리고 젊었던 배우와 나이 든 모습의 배우가 계속 교차 편집 된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그 세월 속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사정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캐릭터에 대한 마음이 점점 더 애틋해진다. 같은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음악으로 이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놀라웠다.
이런 인터뷰를 읽으면 시나리오를 쓰는 각본가나 연출자 못지않게 음악감독 역시 깊게 작품에 관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무의식중에 의도했던 점을 끄집어내서 새롭게 해석하기도 하고, 이미지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알게 된 음악가이자 영상 음악 작곡가로는 가장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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