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베네수엘라 민주화 이끄는 자유의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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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_ Cover Story] 베네수엘라 민주화 이끄는 자유의 투사

이슈메이커 2025-10-28 11:58:07 신고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베네수엘라 민주화 이끄는 자유의 투사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25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선정했다. 예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주의 권리를 촉진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노력했으며,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정의롭고 평화로운 전환을 이루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며 그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Carlos Diaz/Wikimedia Commons
ⓒCarlos Diaz/Wikimedia Commons

 

노벨위원회, “민주주의의 본질 보여줘”
마차도는 1967년 철강업체 ‘시벤사’를 경영하는 부유한 집안의 네 딸 중 장녀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는데, 엔지니어 출신답게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젊은 시절부터 사회 참여 의식이 강했다. 실제 1990년대 후반 우고 차베스의 등장으로 베네수엘라 정치가 요동치자 마차도는 ‘행동하는 시민’으로 변신해 2002년 시민단체 ‘수마테’를 공동 창립했다. 부정선거 감시와 투명성 강화를 위한 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민주주의는 투표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며 시민의 손으로 선거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운동을 이어가던 그는 2010년 정치인으로 방향을 전환해 총선에서 역대 최다 특표를 얻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의회에서도 마차도는 정부의 부패, 언론 통제, 사법 장악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특히 2012년 의회 연설에서 “대통령은 나라가 아니라 권력을 사랑한다”고 직격하며 차베스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후 2014년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자 차베스 정부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했다. 의회는 긴급 표결로 의원직을 박탈했고, 검찰은 마차도를 폭동 선동 혐의로 기소했다.

 

노벨위원회는 “구금과 협박의 위협 속에서도 자유 선거와 인권을 지키려 한 그의 헌신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Ill. Niklas Elmehed/Nobel Prize Outreach/노벨위원회 홈페이지
노벨위원회는 “구금과 협박의 위협 속에서도 자유 선거와 인권을 지키려 한 그의 헌신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Ill. Niklas Elmehed/Nobel Prize Outreach/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출국이 금지되고 공직 출마 자격이 박탈된 뒤, 마차도는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행진을 이어갔다. ‘자유를 잃은 나라는 살아 있는 감옥’이라는 그의 발언이 베네수엘라 전역에 퍼지며 시민 사이에서 마차도는 ‘저항의 상징’이 됐다.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들의 부모들이 “마차도가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라고 외쳤고, 외신들은 그를 ‘철의 여인(Iron Lady of Caracas)’이라 평가했다. 마차도에 의한 민주화 운동 물결이 거세지자 마두로 정권의 탄압도 커졌다. 측근들에게 여러 차례 체포 영장이 발부되고 사무실이 급습당하기도 했다.


  마차도는 야당인 ‘벤테 베네수엘라’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단일후보로 지명됐지만 선관위와 대법원은 ‘공직 박탈 처분’을 근거로 후보 등록을 막았다. 출마가 좌절되자 마차도는 “내가 못 나가면, 우리가 나간다”며 야권 단일화를 주도했다. 그는 중도 보수 성향의 외교관 출신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를 지지하며 정권 교체의 불씨를 살렸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2010년 정치인으로 방향을 전환해 총선에서 역대 최다 특표를 얻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World Economic Forum/Bel Pedrosa/Flickr
시민운동가 출신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2010년 정치인으로 방향을 전환해 총선에서 역대 최다 특표를 얻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World Economic Forum/Bel Pedrosa/Flickr


  그렇게 치러진 대선에서 야권은 자체 입수한 개표 데이터를 공개하며 전체 투표소의 73.2%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도 독립 분석에서 “야권이 공개한 23,720개의 봉합서를 검토한 결과 곤살레스가 67%, 마두로가 30%를 득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CNE)는 마두로 대통령이 51.2%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친(親)여당 성향의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후 실시간 개표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고 시민단체의 개표 참관을 차단했다.


  공식 결과와 야권 집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자 전국 각지에서 항의 시위가 폭발했다.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마라카이보, 발렌시아 등 주요 도시에서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알자지라에 따르면 8월 중순까지 최소 25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400명 이상이 체포되었는데, AFP통신에 따르면 핵심 참모 대다수가 구금되거나 국회로 피신한 상태다. 대선에 출마했던 곤살레스 후보도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3연임에 성공한 마두로 정권의 탄압 속에도 마차도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숨지 않겠다. 끝까지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하며 시민들에게 ‘끝까지 싸우는 지도자’로 각인됐다. 그는 “우리는 대통령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제도를 되찾으려는 것”이라며 “굶주림은 폭정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에 마두로 정권은 마차도가 ‘범죄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마차도는 공개 활동을 하지 못한 채 칩거 중이다.

 

출국이 금지되고 공직 출마 자격이 박탈된 뒤,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행진을 이어갔다. ⓒCarlos Diaz/Wikimedia Commons
출국이 금지되고 공직 출마 자격이 박탈된 뒤,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행진을 이어갔다. ⓒCarlos Diaz/Wikimedia Commons

 

독재정권에 맞선 ‘자유의 투사’
마차도는 독재정권의 압박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을 멈추지 않은 ‘불굴의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다. 20년 넘게 이어진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 아래에서 마차도는 거리와 의회를 오가며 자유와 정의를 외쳐왔다. 이번 수상은 현재까지 그의 노력이 개인의 투쟁을 넘어, 베네수엘라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앞서 4월 미국 시사지 타임은 ‘2025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1명으로 마차도를 선정하면서 “끈기와 애국심의 화신”이라며 “엄청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롭고 공정한 민주주의 베네수엘라를 위한 투쟁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노벨위원회 역시 “구금과 협박의 위협 속에서도 자유 선거와 인권을 지키려 한 그의 헌신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마차도는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성명을 내고 “이 상은 나 개인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베네수엘라인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요 서방 언론들은 마차도를 “21세기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평가했으며, 주요 국가들도 그의 수상을 ‘베네수엘라 민주화의 이정표’라며 환영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 역시 “마차도의 수상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자유, 정치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민주주의 정신의 힘과 회복력을 되새기게 한다”고 환영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 아래에서 마차도는 거리와 의회를 오가며 자유와 정의를 외쳐왔다. ⓒCarlos Diaz/Wikimedia Commons
20년 넘게 이어진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 아래에서 마차도는 거리와 의회를 오가며 자유와 정의를 외쳐왔다. ⓒCarlos Diaz/Wikimedia Commons


  마차도의 정치 노선은 시장경제 회복과 사법 독립, 국제사회 복귀다. 마두로 체제하에서 무너진 법치와 경제 기반을 복원하고, 부패한 국가 석유공사를 개혁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정상 국가 베네수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현실적 과제도 산적하다. 야권의 분열을 봉합하고, 초인플레이션과 외채 위기를 돌파할 경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로이터통신은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와 인도적 지원을 국민 삶의 개선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반발도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그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극우세력 및 이스라엘 정부와의 관계가 재부각되면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차도는 극우·강경우파 모임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PfE)’가 지난 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집회를 개최했을 당시 영상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PfE는 ‘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주도해 결성한 정치 그룹으로 헝가리 피데스, 프랑스 국민연합,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이 속해있다. 당시 PfE는 ‘다시 유럽을 위대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개최된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을 환영한 바 있다. 또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자신이 집권할 시 이스라엘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성명을 내고 “이 상은 나 개인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베네수엘라인의 것이다”라고 전했다. ⓒAlexcocopro/Wikimedia Commons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성명을 내고 “이 상은 나 개인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베네수엘라인의 것이다”라고 전했다. ⓒAlexcocopro/Wikimedia Commons


  한편 마차도의 수상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군자산을 카리브해에 배치하고 마약 운반선을 격침해왔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은 빌미일 뿐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마두로 정권 축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두고 마차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해군 배치를 지지하고 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불법 마약 자금이 베네수엘라 정권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카리브해에 대한 국제적 군사 파견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마차도는 노벨상 수상 직후 엑스에 “이 상을 고통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국민과 우리의 대의를 결단력 있게 지지해 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친다”고 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상을 실제로 받은 사람이 오늘 전화해서 ‘이 상을 당신을 위해 받는다. 당신이 정말로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며 “매우 고마운 일이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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