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장년층 중에서도 소수만이 즐겼던 문화·레저 활동이 최근 '신드롬'에 가까운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경기 악화로 앞당겨진 은퇴시기, 고령화 여파로 인한 소비층 확대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신체나이 덕분에 은퇴 이후에도 젊은층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문화나 취미에 관심을 갖는 중·장년층이 부쩍 늘면서 그동안 관심 밖에 머물렀던 문화·레저 활동이 점차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 사회 강타한 트로트 신드롬 뒤엔 고령화 수혜 고령층의 관심과 열정
대중음악의 한 장르이자 과거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트로트'의 대중적 인기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한 종편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불붙기 시작한 인기는 당초 '반짝'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트로트 신드롬의 포문을 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TV조선의 '미스트롯'의 시청률은 1회 5.8%로 시작한 이후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해 마지막 회에는 18.1%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종편 채널 예능프로그램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이후 같은 채널에서 방영된 미스트롯의 후속 프로그램 '미스터트롯1~3' '미스트롯2~3' 등도 종전의 시청률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며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다. 그 과정에서 임영웅, 영탁(본명 박영탁), 장민호, 진해성, 송가인, 홍지윤 등 트로트 스타들도 대거 탄생했다. 이들은 프로그램 종방 이후에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일부는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며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일례로 '미스터트롯1' 우승자인 가수 임영웅의 경우 지난해 콘서트 매진 행렬에 힘입어 홀로 300억원에 달하는 활동 수익을 올렸다.
트로트 신드롬을 주도하는 연령대는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트로트 인기의 시발점이 된 종편 채널의 주 시청층이 50대 이상인데 최근 고령화 여파로 50대 이상 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그들의 문화가 점차 주류로 거듭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4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주 5일 이상 TV 이용 비율은 연령대와 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50대 미만에선 한 자릿수에 그친 반면 그 이상 연령대에선 50대 18%, 60대 38.6%, 70대 71.7% 등을 기록했다. 70대와 10대(3.5%)의 차이는 무려 20배가 넘었다.
50대 이상 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인구 비중은 16.94%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60대가 14.87%로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70대 이상의 경우도 12.31%에 달해 전체 인구 중 50~70대의 비중은 44.12%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앞으로도 평균 연령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에서 트로트 신드롬 또한 지속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앞으로 꾸준히 상승해 2052년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 설 것으로 전망됐다.
'노땅 레저' 파크골프·낚시, 고령화 업고 '대중 레저' 발돋움…MZ세대 마저 '급관심'
과거 고령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레저 활동이 '국민 레저'로 발돋움하는 사례도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트로트와 마찬가지로 주 이용층인 고령층의 인구가 늘어난 게 결정적 이유로 지목된다. 파크골프, 낚시 등이 대표적이다. '파크골프'는 골프와 마찬가지로 전용 채와 공을 가지고 진행하며 더 적은 타수로 홀컵에 넣는 팀이 승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걷기와 대화가 수반되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최적화된 레저 활동으로 평가돼 왔다.
파크골프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나라살림연구소, 대한파크골프협회 등에 따르면 파크 골프를 즐기는 사람 숫자(협회 회원 수 기준)는 2020년 약 4만5000명에서 2024년 약 18만4000명으로 무려 310% 가량 급증했다. 전국의 파크골프장 수 역시 2020년 187개에서 지난해 5월 기준 423곳으로 늘었다. 업계에선 실제로 파크골프를 접하는 숫자는 협회 회원 수 보다 약 5배 가량 많은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라면 파크골프장 숫자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파크골프를 즐기는 연령대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60대 이상 시니어 세대의 전유물로 불렸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40대, 30대 등의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필요한 채의 개수가 단 1개뿐이고 골프장 보다 좁은 공간에서 진행 가능해 높은 비용과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골프를 대처할 수 있다는 게 매력요소로 꼽히고 있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파크골프장은 지자체가 시설관리공단 등에 위탁해 운영하기 때문에 이용료가 1만원 안팎 수준에 불과하다. 또 골프장처럼 넓은 공간이 필요 없어 대중교통 접근성도 뛰어난 편이다.
낚시 역시 인기 레저 활동으로 각광받고 있다. 파크골프와 비슷한 이유다. 과거 중·장년층의 취미나 레저 활동에 불과했으나 주 이용층의 인구가 빠르게 늘고 코로나19를 계기로 젊은층의 유입까지 가속화되면서 그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낚시어선은 약 4000척이 운영되고 있다. 또 연간 낚시어선 이용객 수는 약 500만명, 전체 낚시 인구는 7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불과 500만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50%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낚시를 소재로 한 TV 예능 프로그램도 '낚시 열풍'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한 종편 채널에서 방영 중인 '도시어부'의 경우 '시즌1' 최고 시청률이 5%에 육박하며 낚시 예능의 대표주자로 발돋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작진 교체와 비슷한 포맷의 반복으로 시청률이 다소 주춤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수많은 고정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튜브 등에서도 낚시를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으며 낚시 관련 유튜브 스타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중·장년층의 문화·레저 소비가 급격히 확대된 것은 단순히 인구 구조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이 과거 세대와 달리 활동적 노년을 지향하는 소비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며 "기대 수명 연장으로 여가와 문화생활과 같이 자신을 위한 소비 지출을 아끼지 않는 중장년층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앞으로 중장년층이 주도하는 실버 소비 트렌드가 더 다양해지고 이를 겨냥한 콘텐츠나 서비스 산업도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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