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강해인 기자] 게임 원작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단순한 설정과 구성으로 전 세계를 휩쓴 게임이 있다. 지하철 통로를 반복해서 걸으며 이상 현상을 찾는 ‘8번 출구’는 2023년 출시 이후 누적 다운로드 190만 회를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연예인 및 인플루언서들이 방송을 통해 선보이며 유명세를 탔다. 영화화된 ‘8번 출구’는 원작 게임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영화 ‘8번 출구’는 지하 통로에 갇힌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통로는 이상현상의 유무에 따라 앞으로 가거나 되돌아와야 다음 출구로 갈 수 있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통로에서 탈출하기 위해 헤매다 기이한 인물과 이상 현상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 통로에 갇힌 이유를 알아가게 된다.
게임 ‘8번 출구’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와 함께 의아함을 가졌었다. ‘8번 출구’는 익숙한 공간을 텅 비어 있게 함으로써 으스스한 감정을 유도하고, 여기에 기이한 현상을 더해 공포감을 조성했다. 유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순간은 있지만, 내러티브가 전혀 없어 실사화의 이유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8번 출구’는 원작의 설정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캐릭터와 사건을 끌어와 이런 우려를 박살 냈다. 올해 칸 영화제에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될 정도로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원작 게임을 해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를 줬고,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참신한 설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애초에 내러티브라는 게 없었기에 원작의 플레이 여부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8번 출구’는 통로를 오가는 행위에 몇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원작 게임 속 유일한 NPC였던 걷는 남자는 반복되는 삶에 지친 직장인의 피폐한 심리를 표현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메인 서사는 아니었지만 현대인의 삶을 압축해 놓은 듯해 애잔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메인 서사는 주인공의 고민과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데 게임의 설정을 활용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주인공은 한 여자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자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고, 이 불안한 심리는 미궁을 헤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같은 통로를 오가며 남자는 낙태, 유기된 아기, 부모를 잃은 아이 등 버려진 아이들이 겪는 다양한 상황을 목격하고, 또 체험하게 된다. 한 남자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암시·경고하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면이 있다.
주인공 남자는 반복되는 미궁을 통과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8번 출구’는 수미상관식 구조를 통해 남자의 변화를 담는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퍼즐적인 재미만을 추구했던 원작을 뛰어넘어 영화는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내려는 야심을 보였다.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식이 직설적이고, 이를 보여줄 때 다소 작위적인 느낌도 지울 수 없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내러티브 없이 설정밖에 없던 원작을 이만큼 확장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놀랍고 좋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단순한 이식을 벗어나 원작 그 이상의 것을 해낸 ‘8번 출구’는 최근 나왔던 게임 원작 영화 중 가장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영화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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