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바다의 햇살을 품은 맛, 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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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바다의 햇살을 품은 맛, 삼치

연합뉴스 2025-10-23 11:31: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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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삼치 삼치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 종로 뒷골목, 점심시간이 되면 허기진 직장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향이 있다.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치 냄새다. 달궈진 석쇠 위에서 기름이 튀며 퍼지는 그 향은, 고단한 일과 속에 작은 위로를 건넨다. 삼치 한 점의 고소한 맛에는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삶이 배어 있다.

종로 신진시장 종로 신진시장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삼치는 농어목 고등엇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고등어·꽁치와 함께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등푸른생선이다. 조선시대 전국 대부분의 바닷가에서 삼치가 잡혔으며, 서유구의 '난호어목지'는 삼치를 '등은 청흑색으로 기름을 문지른 듯 윤기가 있고, 맛이 극히 좋다'고 했다.

그는 또 '북쪽에서는 마어, 남쪽에서는 망어라 부른다'고 했다. 삼치의 또 다른 이름 '망어'(亡魚)에는 죽음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 있어 조선의 양반은 꺼렸으나, 서민은 겨울철 반찬으로 즐겨 먹었다.

삼치는 봄에 내만으로 들어와 산란하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살에 기름이 차오른다. 늦가을 찬 바람이 불면 삼치의 배 쪽 살에 은빛 기름이 번들거린다. 이때가 바로 최고의 맛을 내는 계절이다. 그래서 여수나 추자도에서는 '삼치는 찬바람에 살찌고, 기름에 향이 오른다'고 한다.

◇ 약선으로 본 삼치

약선에서 삼치는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며, 비경(脾經)과 신경(腎經)에 작용한다. 온중(溫中)·익기(益氣)·보혈(補血)·이수(利水)의 효능이 있어, 기허(氣虛)나 혈허(血虛)로 인한 피로, 식욕부진, 빈혈, 신경쇠약 등에 좋다고 한다.

또한 삼치는 양기를 북돋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보신장양'(補腎壯陽)의 작용이 있어 기력이 약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다만 열이 많은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다.

음식궁합에서 삼치는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소화불량을 유발하고, 감초와도 궁합이 나빠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무, 파, 생강, 마늘 등과 배합하면 비위를 돕고 냄새를 잡아주는 좋은 궁합이 된다.

현대 영양학적으로 삼치는 DHA와 EPA가 풍부해 뇌세포의 노화를 막고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D는 고등어보다 두배가량 높아 골다공증 예방과 면역력 향상에 기여한다.

삼치의 풍부한 칼륨은 혈압을 낮추고 나트륨을 배출시켜 고혈압과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 또 철분과 아연이 풍부해 빈혈 개선, 피로 해소, 면역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의 어촌에서는 삼치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여수와 추자도에서는 지금도 '삼치가 들면 겨울이 온다'는 속담이 있다. 기름 오른 삼치는 구이뿐 아니라 회·조림·매운탕으로 즐겼으며, 삼치회를 '혀끝으로 녹인다'고 표현했다.

조선시대 어부는 삼치가 가을 바다에서 기름을 채워올 때 '삼치의 기름은 바다의 햇살을 품은 것'이라 했다. 그만큼 기름이 맑고 고소했다.

삼치의 좋은 조리법은 지방이 많아 고온의 직화구이보다 약불의 조림이나 찜이 영양 손실이 적다. 특히 무와 함께 조리하면 비타민 C와 식이섬유가 부족한 단백질 음식을 보완해준다. 삼치를 소금에 절였다가 구우면 기름이 빠지고 단백질이 응축돼 맛이 더욱 깊어진다.

◇ 손자병법으로 적용한 삼치요리

삼치 김치찜 삼치 김치찜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삼치를 손자병법 행군의 장(行軍의 章)에 비유해 철학적 깊이와 음식의 생명력을 연결해 본다. 이 장은 움직임과 멈춤, 길과 지형, 군의 기운과 적의 징후를 다룬다. 즉, 어떻게 머물고, 언제 나아가야 하는가를 다루는 병법이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기에 삼치는 살이 오르고 지방이 차오른다. 손자는 무작정 싸우지 말고, 때와 장소에 맞게 머물거나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삼치의 삶 또한 이와 같다. 수온이 떨어지면 머물고, 조류가 바뀌면 움직인다. 자연의 흐름을 읽는 본능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추자도 삼치회 추자도 삼치회

[연합뉴스 자료 사진]

삼치회는 정중동(靜中動)의 병법이다.

회는 불을 쓰지 않는다. 즉, 움직임을 멈추고 자연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자체로 고요 속의 힘, 즉 정중동을 상징한다.

삼치는 살이 부드럽고 기름이 많아 회로 먹기 쉽지 않다. 그러나 겨울 초입, 수온이 차가워질 때 잡은 삼치는 살이 단단하고 지방이 응축돼 있어, 얇게 썰면 입안에서 은은한 단맛과 바다 향이 어우러진다. 손자가 말한 '형세를 살피고 기세를 다스리는 정지의 지혜'에 해당한다.

삼치구이는 진군(進軍)의 병법이다.

불은 움직임이며 병법에서의 진군이다. 삼치의 지방은 불과 만나 향으로 승화된다. '지형을 이용해 승세를 만든다'(因地制勝)는 손자의 말과 통한다. 삼치의 지방은 불과 만나면 향이 강해진다.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익으며 고소함이 극대화된다.

삼치의 지방은 전장에선 불리할 수도 있는 '무거움'이지만, 불이라는 환경을 만나면 그것이 오히려 승리의 요인이 된다. 삶에서도, 음식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 것인가의 선택이다.

삼치 조림은 유영(有容)의 병법이다.

약불로 천천히 조리하며, 전투 후 군심을 안정시키듯 긴장을 풀어주는 음식이다.

삼치 조림은 간장과 무, 고추, 생강의 향이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의 음식이다. 조림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불을 약하게 해 천천히, 꾸준히 조리한다. 즉, 전투 후의 회복식이다. 삼치 조림은 병사에게 있어 '정비의 시간'과 같다.

삼치 매운탕은 응변(應變)의 병법이다.

고춧가루와 된장 등이 한데 어우러져 강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이는 '지형에 따라 병력을 변화시켜야 한다'(因地制變)는 뜻을 닮았다.

삼치 매운탕은 행군 중 만난 비바람 같은 요리다. 맑은 국물 속에 고춧가루, 마늘, 파, 된장과 같은 강한 재료가 함께 끓어오르며 복잡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즉, 매운탕은 행군 중 돌발상황에 대응하는 '응변의 요리'인 셈이다.

삼치의 생애는 '움직임의 예술'이다. 끊임없이 헤엄치며, 조류를 거슬러 오르고, 계절에 따라 남과 북을 오간다. 손자는 군이 피로하면 쉬게 하고, 굶주리면 먹이고, 뜻이 흔들리면 위로하라고 했다. 이 말은 단지 군사학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리하면 삼치회는 고요한 정지의 병법, 삼치구이는 진군의 병법, 삼치 조림은 유지의 병법, 삼치 매운탕은 응변의 병법이다.

또한 손자는 '최상의 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上兵伐謀)이라 했다.

음식 또한 그렇다. 불필요한 자극과 과한 욕심을 버리고, 제철의 재료를 가장 알맞게 다루는 것이 곧 승리의 밥상이다.

자연의 흐름을 읽고, 때를 기다리며, 움직임 속에서도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그 지혜를 밥상에 올릴 때, 우리는 비로소 손자가 말한 '지형을 아는 자가 천하를 제패한다'(知地者勝)는 뜻을 깨닫게 된다.

완도 삼치 완도 삼치

[연합뉴스 자료 사진]

오늘도 누군가는 냄새에 이끌려 식당 문을 연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치살을 젓가락으로 떼어내어 하얀 밥 위에 올리면, 그 순간 따뜻한 기운이 몸속을 돈다. 한 점의 삼치에 담긴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지혜, 그것이 곧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밥상'일 것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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