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너무 세상 모든 것이 움직임”…박솔뫼가 그린 세계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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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명문장] “너무 세상 모든 것이 움직임”…박솔뫼가 그린 세계의 리듬

독서신문 2025-10-22 11:59:30 신고

원준이는 일어나 나무를 만져 보았다. 나무를 만진 손에서는 이끼 냄새 같은 것이 희미하게 났다. 나무껍질을 벗겨 보았다. 하나 더 벗겼다. 원준이는 껍질을 만지작거리고 바닥에 긁어 보다가 버렸다. 하나는 멀리 던졌다. <16쪽>

F가 먹고 있는 것은 토스트였고 그것이 샌드위치는 아니었지만 책과 자신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느낀 책과의 강한 결속력을 그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고 단지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49쪽>

어떤 일본인은 나에게 영어로 길을 물었고 나는 나도 처음 와서 모른다고 답하고 그때 옆에 있던 조민형이 일본어로 대답을 하고 또래로 보이는 일본인 남자애는 환하게 웃는다. 나는 그 옆에서 트렁크를 세워 놓고 배멀미약이 필요한가 보통 그렇게 커다란 배는 멀미를 안 한다는데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천천히 아껴서 하다가 관두었다. <82쪽>

왜 그랬더라 왜 한 것이지 어떨 때는 사소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사소한 것들을 다시 하고 하고 그것을 또 반복하면 조금씩 다른 곳으로 몸을 옮길 수 있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 골목에서 다음 골목으로 아마도? <86쪽>

어느 곳 이상 넘어가면 끝인데 그 끝이 어딘지는 가본 사람만 안다는 거야.

이런 대화를 떠올리면 카페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고 커피는 너무나 중요하고 커피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여기며 오사카의 아침 거리를 들뜬 채 걷고 있는 두 사람은 정확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89-90쪽>

친구가 근처에서 일을 해서 오가다 간판을 자주 봤거든요. 저는 발이 꽤 빠른 편인데 뭔가 마음이 급하고 자주 넘어져서 제가 뭔가 잘못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 그런데 동시에 그것이 나의 움직임이라는 생각 그 두 생각을 똑같을 정도의 양으로 자주 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좋지만 스스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105쪽>

개가 갑자기 뛰어가고 두 사람도 따라서 뛰었다. 서원이는 준우에게 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떠올랐다. 그런데 숨이 차서 물을 수가 없었다. <159쪽>

하지만 현청을 지나 공원을 지나 지방재판소를 지나 호텔들을 지나는 길은 너는 지금 모르는 길을 처음 가 본 길을 그러나 반복하고 싶어지는 길을 걷고 있다고 순간순간 나를 일깨웠다. 그러면 잠깐이지만 기분이 환해지고 나는 정말 오래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85쪽>

부사와 시나노 스위트, 홍옥과 조나 골드. 토키와 시나노 골드, 별의 금화와 금성. 단단하고 새콤하고 과즙이 흐르고 붉고 노란 사과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변하지 않은 채 마치 사과만이 새롭게 가게에 쌓여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사과만큼 무언가 바뀌고 움직이며 그러나 어딘가 여전한 사람인 채로 나는 겨울의 사과를 먹게 될 것이다. <190-191쪽>

스칸디나비아 클럽이 문을 닫기 전에도 나는 서울에 있었는데 그때는 그런 것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거기에 앉아 있는 나는 상상할 수 있었다. <225쪽>

첫 시간에 팔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움직임을 해 보았는데 여전히 저는 제가 움직일 때 낯설고 어색한 순간이 있지만 다른 사람의 팔이 함께 움직일 때 더욱 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다시 반복할지가 요즘 자주 생각하는 거예요. <248쪽>

『영릉에서』
박솔뫼 지음 | 민음사 펴냄 | 260쪽 | 17,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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