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프리미어리그가 다시 2000년대식 축구로 회귀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의 올리버 케이 기자는 16일 보도한 칼럼에서 “과르디올라식 점유 중심 축구의 영향력이 약해지며, 세트피스와 롱스로 중심의 직선적이고 끊김 많은 경기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는 “과르디올라가 축구를 재미없게 만들었다는 주장과 달리, 지금의 프리미어리그는 오히려 더 무겁고 지루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한 축구인가”라고 반문했다.
■ 세트피스 부활, ‘2000년대식 세컨드 볼의 시대’가 돌아왔다
케이는 리버풀 시절의 차비 알론소가 회상한 2004년 볼턴 원더러스 원정전을 언급하며 글을 시작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는 롱볼, 세컨드볼, 피지컬 전쟁의 무대였다. 알라다이스의 볼턴, 케빈 놀란, 케빈 데이비스, 그리고 흔들리는 땅 위의 세트피스.” 케이는 “그 시절의 풍경이 20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세트피스 득점(코너·프리킥·스로인) 은 경기당 0.7골로, 2010-2011시즌 이후 최고치다.
공격 진영에서 박스로 향하는 롱스로 비율은 2019~21시즌 6%에서 지난 시즌 13%, 올 시즌에는 27% 이상으로 급증했다.
골킥의 롱볼 비율은 9시즌 연속 감소세를 끊고 51.9%로 반등했다. 헤더 득점 비중은 19.8%로 2000~01시즌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케이는 “숫자가 가리키는 것은 명확하다. 프리미어리그가 다시 세트피스 중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 그러나 ‘골’은 줄었다… 오픈플레이 득점 급감
세트피스 득점이 늘었다고 해서 골이 많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 득점은 뚜렷하게 줄었다.
리그 7라운드(70경기) 기준 182골, 경기당 2.6골로, 2014~15시즌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오픈플레이 득점은 2.38골(2시즌 전) → 2.15골(지난 시즌) → 1.69골(올 시즌)로 급감했다.
이는 2008~09시즌 이후 최저치다.
케이는 “세트피스 골이 늘었다는 건 오히려 열린 경기에서의 창의성이 줄었다는 뜻”이라며 “득점은 있지만, 그 과정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 끊김 많은 경기… 공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단 55분
리그 사무국이 골키퍼의 시간 지연을 단속했지만, 역설적으로 인플레이 시간은 더 줄었다.
평균 실플레이 시간은 58분 11초(2023년)에서 56분 59초(2024년), 올해는 55분으로 감소했다.
경기 시간은 평균 100분 35초로 늘었지만, 그중 45분 이상이 VAR, 교체, 치료, 세리머니, 세트피스 준비에 소요되고 있다.
즉, 경기 중 임의의 시점에 TV를 켜면 공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을 확률은 54.7%에 불과하다.
케이는 리버풀의 전담 스로코치 토마스 그로네마르크의 말을 인용했다.
그로네마르크는 “롱스로는 성공적일 수 있지만, 많이 시도하려면 경기를 자주 멈춰야 한다. 클롭은 리버풀의 빠른 리듬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 롱스로 전략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최근 브렌트퍼드는 리그 최다 롱스로 시도 팀이 됐다. 브렌트퍼드는 스로인 한 번에 평균 25.4초를 사용하며, 맨유전(3-1 승)에서는 총 14분 25초가 스로 준비로 소모됐다.
토트넘 역시 평균 21.5초를 소비하며 롱스로를 적극 시도했지만, 큰 위협은 만들지 못했다. 코너킥 상황도 비슷하다. 선덜랜드는 평균 49.5초, 아스널은 45.4초를 코너 준비에 쓰며, 아르테타의 팀은 7경기 동안 코너킥 준비에만 40분 이상을 소모했다.
케이는 “세트피스에 들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경기의 흐름은 끊기고, 템포는 죽어간다”고 경고했다.
■ ‘과르디올라가 축구를 죽였다’?… 데이터는 정반대
과르디올라의 점유 중심 철학은 “로봇 축구” “창의성의 종말”로 비판받아왔지만, 케이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2017-2018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106골 중 85골을 오픈플레이에서 넣었다. 그해 시티는 경기당 평균 688개의 패스, 90분 내내 흐름이 유지되는 유창한 경기력으로 리그를 지배했다.
케이는 “점유 중심 축구가 지루했다면, 어떻게 역대 최다 골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라며 “득점력과 볼 인 플레이 시간은 점유율 상승과 함께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전체의 데이터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지난 10년간 리그의 패스 정확도와 점유율이 상승하면서, 총 득점과 오픈플레이 득점 비중도 함께 늘었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패스 수는 경기당 941개(2시즌 전)에서 849개로 급감했고, 맨시티 역시 496개로 감소했다. 그와 동시에 득점·오픈플레이 비율이 모두 떨어졌다.
케이는 “과르디올라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축구의 생동감과 창의성을 빼앗고 있다”며 “지금의 프리미어리그는 기술보다 효율, 흐름보다 재시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조심하라, 당신이 원하던 축구가 왔을지 모르니”
케이는 마지막으로 2000년대 중반의 프리미어리그를 떠올린다. 무리뉴의 첼시와 베니테스의 리버풀이 맞붙던 시절, 16번의 맞대결 중 10경기가 1골 이하로 끝났던 그 시절의 답답함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썼다.
“그때도 박진감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기는 세트피스 한 방과 긴 정지 시간 속에서 끝났다. 지금의 프리미어리그가 그 길을 다시 걷고 있다.”
그는 이어 “세트피스와 롱스로, 끊김과 재시작으로 점철된 경기가 반복되면 결국 축구의 본질인 유창함·즉흥성·창의성이 사라진다”며 “과르디올라가 재미를 빼앗았다고 비난하던 이들은 지금의 축구를 보고 조심해야 한다. 이것이 당신이 원했던 축구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디애슬레틱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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