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위험하다.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 일터에서, 가정에서 뒤처지고 있다. 학업 성취도는 낮아지고,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 받으며, 훨씬 높은 비율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들은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스스로 헤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는 그동안의 경제구조 변화, 고립,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심화가 낳은 혼란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 남성이 자살할 확률은 여성의 약 세 배에 달한다. 실제로 45세 미만 영국 남성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은 자살이다. 절망사에 관한 연구를 보아도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의 70퍼센트 가까이가 남성이다.
미혼 남성은 기혼 남성보다 건강도 더 나쁘고, 취업률도 더 낮으며, 사회적 네트워크도 약하다. 약물 복용으로 사망한 미혼 남성은 2010년부터 10년 새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_(81쪽)『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 그 누구도, 어떤 기관이나 단체도 관심을 기울이거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는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대립각만 세우고 있다. 진보주의자는 남성성을 탓하고 보수주의자는 페미니즘을 탓한다. 그들은 이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모두 실패하고 있다.
정치적 좌파의 큼직한 실패는 성 불평등이 양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점점 더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_(193쪽)
진보주의자들은 남성이 겪는 어려움을 인정하면 소녀와 여자들을 위한 노력이 약해질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성평등 문제를 제로섬 사고로 인식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한 사고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패자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보수주의자들은 겉으로는 남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려고만 한다. 저자는 “소년과 남자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통적인 남성 역할의 회복이라는” 우파의 가정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실수라고 지적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소년과 남자들을 도와 새로운 평등의 세계에 적응하게 만들기는커녕, 여성의 진보에 저항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저항하면 기분은 좋을지 모르겠다. (···) 하지만 그것은 또한 헛되며 무의미하기도 하다. _(217쪽)
소년과 남자들의 문제에 좌파와 우파가 대응하지 못하면서 우리네 정치적 삶에 위험한 공백이 생겼다. (···) 좌파는 생물학을 무시하고, 우파는 생물학에 너무 기댄다. 좌파는 소녀와 여자들에 대한 전쟁을 보고, 우파는 소년과 남자들에 대한 전쟁을 본다. 좌파는 남성성을 질병이라 하고, 우파는 페미니즘을 질병이라 한다. _(218쪽)
저자는 해방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이 지닌 문제는 ‘지나치게 앞서 나아갔음’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녀의 성평등은 이제 남성의 부족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페미니즘 이후의 세계에 적용될 남성성의 긍정적 비전이 필요하다. (···) 바로 그것이 진보의 본질이다. 이 경우 그것은 소년들에게 더는 먹히지 않는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을, 그리고 남자들이 전통적인 남성 역할의 상실로 인한 혼란 상태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_(301쪽)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인간’이란 공통분모 안에 있다. 어쩔 수없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성평등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존재론적 안정감을 앓고 방황하게 된다면, 결국 인간인 남성과 여성은 모두 불행해진다. ‘공명조’도 시기와 대립으로 함께 자멸했다.
■ 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
리처드 리브스 지음 | 권기대 옮김 | 민음사 펴냄 | 376쪽 |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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