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가담'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계엄 당시 용산 대통령실 대회의장 CCTV 영상과 정치인 등을 수용하기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했다는 문건 등 증거가 제시됐음에도 법원은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法, 증거 보고도 "다툴 여지 있어…도주·증거인멸 우려 없다"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의 상당성(타당성)이나 도주·증거인멸 염려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15일 영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나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수사 진행, 피의자 출석 경과 등을 고려하면 도주·증거인멸의 염려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앞선다"고 부연했다.
앞서 내란특검팀은 지난 9일 박 전 장관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단순히 계엄을 방조한 것을 넘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순차적으로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박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로 돌아와 간부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회의에는 법무부 실·국장 등 10명이 모였는데, 이 자리에서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 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있다. 실제로 입국·출국금지와 출입국 관련 대테러 업무를 맡는 출입국 규제팀이 법무부 청사로 출근한 사실도 확인됐다.
계엄 이후 정치인 등을 수용하기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했다는 문건도 확보했다.
특히,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공개된 계엄 당일 대통령실 대회의실 CCTV 영상에는 박 전 장관이 대접견실 책상 위에 놓인 A4용지에 메모를 하거나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는 모습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 인사인 정옥임 전 새누리당 의원도 15일 CBS라디오에서 "현대판 간신들이다. 대통령이 그 정도면은 만약에 장관 중에 이건 아니라고 정말 그 피를 토하면서 그 호소하고 설득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때 계엄이 강행되더라도 국민들 입장에서 지금 그리고 망가진 보수 지지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의 휴대전화에서 구치소 수용 현황 관련 보고를 받은 데이터가 삭제된 점, 사건 이후 휴대전화가 교체된 점 등을 들면서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심사에서도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내란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으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통상적인 업무 수행을 했을 뿐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취지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사건을 검토한 법원은 사실상 혐의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영장을 기각하면서 박 전 장관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한덕수에 박성재까지…잇단 영장 기각에 특검 수사 제동
특검팀은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지만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이어 박 전 장관의 영장까지 연이어 기각되면서 특검팀의 향후 '내란 수사'에도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 8월 한 전 총리에 대해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중요한 사실관계 및 피의자의 일련의 행적에 대한 법적 평가와 관련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이를 기각했다. 특검팀은 결국 한 전 총리를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다만, 내란 방조 혐의였던 한 전 총리와 달리 박 전 장관은 사실상의 내란 공범에 해당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적용했음에도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특검팀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내란 계획 수립에는 동참하지 않았지만 비상계엄 선포 후 각종 후속 조치를 지시함으로써 순차적으로 내란 행위에 가담한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요건을 갖췄다고 본 것이다.
이는 앞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상민 전 장관과 비슷한 법리 구조였다. 이 전 장관은 평시 계엄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임에도 불법적인 계엄 선포를 사실상 방조했고 나아가 계엄 선포 후 경찰청과 소방청에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 등으로 지난 8월 1일 구속됐다.
이런 배경에서 특검팀은 당초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 못지않게 박 전 장관의 혐의를 뒷받침할 물증과 논리를 갖춘 데다 적용 법리마저 유사해 영장이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막바지에 이른 계엄 국무회의 관련 수사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특검팀은 오는 15·17일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까지 소환 조사하고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한 뒤 계엄 국무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박 전 장관 신병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서 한템포 숨고르기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 수사 일정을 유지하면서 박 전 장관에 대한 보완 수사를 병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은 마찬가지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민의힘은 국회에서의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관련해 내란 공범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한 수사라고 비판해 왔다.
박 전 장관이 직접 계엄 선포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후속 지시를 한 혐의를 받아왔지만 영장이 기각된 만큼 야권 입장에선 반격할 명분이 생긴 상황이다.
與 "법원의 내란 옹호인가…조희대 답해보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에 대해 "법원의 내란 옹호냐, 내란 척결에 대한 법원의 반격이냐"고 따져 물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참담하게도 한덕수 씨에 이어 박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내란 반대는커녕 방조와 가담을 일삼은 이들에 대한 구속수사를 신속히 해야 한다"며 "이렇게 영장을 기각하면 사법부 독립과 신뢰가 높아지는가, 조희대 대법원장님 대답 좀 해보시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검을 향해 "철저한 보강 수사로 이들 모두를 구속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정 대표는 "국무위원으로서 엄연한 위치와 책임이 있으면서 내란에 적극 가담한 자들, 이들은 이미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자유로이 두면 입을 맞추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모색할 것"이라며 "민주당은 내란 진상이 밝혀지고 가담한 모두가 처벌받는 날까지 계속 진실을 추적해 완전한 청산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계엄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허리 굽혀 국민께 사죄했던 한덕수는 특검이 공개한 CCTV 영상으로 모두 거짓말인 것이 드러났다"며 "제2, 제3의 한덕수까지 반드시 발본색원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덕수뿐 아니라 최상목과 이상민, 박성재도 마찬가지다"라며 "여전히 거짓으로 버티며 특검 수사를 피하려는 또 다른 한덕수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후안무치가 또 다른 위기의 불씨가 돼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에 하루빨리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그 정점에 있는 한덕수부터 재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원내대표는 특검을 향해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는 CCTV 영상으로 부정됐다"며 "바로 한덕수, 박성재의 구속 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힘 송언석 "사필귀정…특검 태생이 비정상"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5일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하고 가담한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대해 "사필귀정"이라고 밝혔다.
송 원내대표는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 인터뷰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박 전 장관의 영장도 기각됐다"며 "현재 하고 있는 특검의 수사는 원래 (특검의) 태생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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