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창작가무극 '전우치', K-슈퍼히어로 신화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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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N] 창작가무극 '전우치', K-슈퍼히어로 신화의 서막

뉴스컬처 2025-10-14 11:39:46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2025년 가을, 서울예술단이 또 한 편의 새로운 서사를 무대 위에 소환한다.

오는 25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창작가무극 ‘전우치’는 조선 중종 시대 실존 인물 전우치를 모티프로, 오래도록 전해진 설화와 신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판타지 총체극이다. 작품은 고전을 각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질문과 상상력을 불어넣은 하나의 ‘현대적 영웅 서사’로 탄생했다. 도술과 환술로 부패한 권력에 맞서고 백성을 구제했던 전우치. 서울예술단은 그를 통해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정의와 이상, 저항과 연대의 감각을 다시 꺼내려 한다.

2025 서울예술단 신작 '전우치' 인물 포스터 (좌: 서울예술단 이한수/우: 손동운(하이라이트)). 사진= (재)서울예술단
2025 서울예술단 신작 '전우치' 인물 포스터 (좌: 서울예술단 이한수/우: 손동운(하이라이트)). 사진= (재)서울예술단

전우치는 한국 설화 속 인물 중에서도 유독 장난기와 재치, 민중적인 감성을 두루 갖춘 인물로 기억된다. 작가 경민선은 그를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을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 없는 불편한 마음’을 지닌 존재로 상상했다. 불완전하고 유쾌한 이 인물은, 실패하고 흔들리면서도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영웅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바로 이 전우치를 ‘K-슈퍼히어로’로 확장시켜, 오늘의 관객에게 새로운 정의의 얼굴을 제시한다.

서울예술단은 이번 무대를 하나의 시각적·감정적 총체극으로 구현한다. 환술이라는 개념은 그 중심에 있다. 연출가 이대웅은 ‘전우치 → 환술 → 환희(幻戱)’라는 개념의 흐름 속에서, 지금 이 시대에 왜 전우치가 필요한지를 고민했다. 세계적인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 매지컬 씬 디렉터로 합류해 환술은 시각적 볼거리를 넘어서, 감정과 철학을 이어주는 서사적 장치로 확장된다. 그는 ‘마술적 장면이 잠깐의 환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깊이와 해석의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다.

이 환상적인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구조는 이렇다.

신과 인간, 요괴와 신령이 함께 세상을 운영하던 신화적 시대. 어느 날, 도사 전우치가 지상의 평화로운 마을 장자골에 큰불을 질렀다는 혐의를 받는다. 인간은 물론 요괴들까지도 모두 사라진 대화재의 책임자로 지목된 그는, 도리어 옥황상제의 궁궐에 숨어들어 불로불사의 복숭아 ‘반도’를 훔쳐 달아난다. 그가 왜 신의 금기를 깨고 도망쳤는가를 두고, 온 세상의 신선과 요괴들이 전우치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염라대왕, 구미호, 전우치의 옛 스승 서화담, 그리고 옥황상제까지—반도를 둘러싼 천상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결국 전우치는 천상의 재판장에 서게 되고, 세상의 운명을 바꿀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이르게 된다. 진짜 불을 지른 이는 누구인가. 전우치는 세상을 구할 것인가, 혹은 파멸로 이끌 것인가.

이처럼 ‘전우치’는 명백한 영웅 서사의 외형을 띠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질문’이 자리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관객은 수동적 수용자가 아닌 해석자로 참여하게 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 족자의 형상을 본뜬 무대 구조, 전통 민화와 도교적 상징을 낯설게 배열한 영상디자인은 이 질문을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작품의 정서적 밀도는 음악에서 절정을 이룬다. 작곡가 황호준은 전통 장단과 현대 사운드를 결합해 전우치의 내면을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반복되는 테마와 감정의 굴곡에 따른 변주는 전우치가 겪는 내적 여정과 세계와의 충돌을 그대로 드러낸다. 음악은 서사의 그림자이자 또 다른 주인공으로, 이 환상의 무대에서 가장 현실적인 감정을 관객의 귓가에 남긴다.

무대 위를 채우는 인물들도 눈길을 끈다. 전우치 역은 서울예술단의 대표 배우 이한수와,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 출신으로 뮤지컬에서 섬세한 연기를 선보여온 손동운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이한수는 압도적 무대 장악력과 정교한 감정 연기로 서사의 중심을 탄탄히 이끌고, 손동운은 음악과 감정의 밀도를 극대화한 ‘또 다른 전우치’로 관객에게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스승 서화담 역에는 내면 연기의 진폭이 깊은 최인형, 신비한 기운과 무용적 표현으로 구미호 역을 맡은 이은솔, 절대 권력의 상징 옥황상제 역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금승훈이 출연한다. 또한, Mnet ‘스테이지 파이터’로 주목받은 무용수 최규태, 권요한, 김민석이 합류해 인간과 신, 요괴가 공존하는 무대 위 유니버스를 풍성하게 채운다.

‘전우치’는 궁극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무엇이 정의인가. 이상은 어떻게 현실을 이길 수 있는가. 영웅이란 존재는 과연 완벽해야만 하는가. 서울예술단은 이번 무대를 통해 그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열어둔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그 물음은 관객의 마음속에 조용한 여운으로 남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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