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기다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는 내가 떠나버렸다고 믿었다. 언제나 항상 말해온 것처럼, 그러나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모르는 채. 네가 나를 발견하지 못한 그 순간에 나는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읽고 있었다. 나는 너의 집을 모르고, 너는 나의 집을 알지만 그것은 너무나 멀리 있다. _「올빼미」
광채를 뿜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템포였다. 그것은 한때 내가 그의 글에서 읽고 사랑하게 되었던 그 템포였기 때문이다. 진짜 작가는 자신의 글을 몸으로 발산한다. 그러므로 그의 템포는 그가 쓰는 글의 호흡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의 템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거나 느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더 빠르지 않거나 느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_「올빼미」
그러나 아무리 해도 완전하게 다 감추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네가 결국 이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러면 나는 수치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재앙을 막는 방법은 오직 하나, 다시 입안으로 삼켜 숨겨버리는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입을 새의 부리 모양으로 만들고 두 팔을 벌린 채 허리를 굽혀 그것을 향해서…… _「올빼미」
기록하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에 담거나 새기지 않고 잊혀져버릴 운명인 그런 문장들을 수집하는 일은 단지 습관 때문에 계속 되풀이되는 단순하고 무익한 노동에 지나지 않았으나, 양은 그런 식으로 비록 자신의 필체로 기록되어 있기는 하나 너무나 의외인 문장들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발견하는 일을 내심으로 남몰래 신비스럽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굳이 중단하지 않았다. _「양의 첫눈」
그렇지만 사실 가장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것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과정과 노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이미 모두 다 알고 있는 그 사실 중에 그냥 있는 건지도 모르지. 달이나 별, 아니면 우리가 매일 부르고 있는 노래처럼 이미 모두 다 당연히 알고 있는 그런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에서. _「북역」
나는 언제나 시간이 장소에 따라 다른 흐름과 성격을 갖는다고 느껴왔다. 그러므로 이곳과 그곳은 늘 다르다. 이곳의 우리와 그곳의 우리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이곳과 그곳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문장을 쓴다. _「올빼미의 없음」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그러면서 한없이 비경제적이고 간헐적인 여행자로 죽는 날까지 남는 것일 뿐. _「올빼미의 없음」
내가 말해준 속담을 기억하고 있겠지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 삶의 많은 일에 그대로 적용이 된답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놓아요. 떨지 말아요. 당신의 마음을 잔잔한 물 위의 연꽃처럼 평화롭게 가져요…… _「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그러나 정말로 두려운 것은, 우리가 그런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추어버리고 말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가능성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중에 불현듯 기차에서 내릴 것이고, 기차 시간표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역무원의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소중한 편지나 기차표를 잃어버리고, 그리하여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더이상 앞으로 나가는 대신에 입술을 깨물면서 헛되이 절망하고, 그리고 되돌아가버릴지도 모릅니다. _「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하지만 아무 말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것은, 이 모든 장면이 단지 꿈속을 지나가는 그림자이며, 우리가 간직한 모든 비현실과 마찬가지로 이 순간의 통증이나 부자유 또한, 실제의 우리를 전혀 방해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_「무종」
삶 아닌 모든 것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누가 첫번째 돌을 던졌을까?) 그중의 하나가 내 혀에 와 박혔던 것이다. _「밤이 염세적이다」
『올빼미의 없음』
배수아 지음 | 창비 펴냄 | 360쪽 | 18,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Copyright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