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살 이전 나치의 혐오와 차별
"우수한 인종의 출산이 너무 약할 때 일어나는 질적 인구의 하락
열등한 인종이 4명의 아이를 낳고, 우수한 인종이 2명의 아이만 낳는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유전병 환자 한 명을 위해 국가는 매일 5.50라이히스마르크를 지출한다.
그 돈이면 유전적으로 건강한 한 가족이 하루를 살 수 있다!"
"유전적 결함을 가진 이 사람은 평생 동안 지역 사회에 6만 라이히스마르크의 손실을 입힙니다. 동포 여러분, 그 돈은 여러분의 돈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가장 병적인 존재를, 아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임 이나 낙태를 통해 수십만 명의 열등인종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야 말로 질병에 시달리는 타락한 종족을 만들어내는 비참한 광기보다 더 품위 있고, 사실 천 배나 더 인도적인 일이다.
-아돌프 히틀러
나치는 이렇듯 T4 작전 이전부터 장애인을 비인간화, 당장 제거해야할 존재로 규정했음. 그 외에도
-쓸데 없이 음식만 먹는 것들(Unnütze esser)
-하등 인간(Untermensch)
-살 가치가 없는 생명(Lebensunwertes Leben)
등의 용어가 등장함.
1933년에는 단종법이 실시되어 국가 주도로 강제불임화 시술이 시행되었고 장애인은 점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시작함.
2. 학살의 시작
번역:국가지휘자 필리프 보울러와 의사 브란트에게
치료에 가망이 없을 만큼 병세가 무겁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환자에게 병세에 관해 엄격한 감정을 실시한 뒤에 특별히 지명한 의사에게 자비로운 죽음의 처치를 허가할 권한을 부여한다
A 히틀러
위: 나치당 비서실장 필리프 보울러
아래: 나치 무장친위대 의사 카를 브란트
1939년에 히틀러는 두 나치 고관들에게 비밀 지령서를 내렸고, 이는 본격적으로 국가 주도의 장애인 말살 작전을 실시한다는 것이었음.
본부는 베를린 미테구 티어가르텐슈트라세 4(Tiergartenstraße 4)에 위치했는데 사실 여기서 따와서 이름이 T4 작전인거임.
당시 티어가르텐슈트라세는 나치 주요 중앙 정부기관들이 밀집된 구역이었는데, 이 곳에 배치되면 당연히 보안에 용이했고 히틀러로부터 명령을 빨리 하달받을 수 있었음.
(역삼각형이 장애인 학살 시설들임)
브란덴부르크, 밤베르크, 그라네페크, 하다마르, 하르타임, 존넨슈타인 총 6곳에 안락사 시설이 설립되었고 겉으론 복지시설, 요양시설로 위장함.
(하다마르의 일산화탄소 가스실)
초기에는 독극물 주사를 넣거나 굶겨 죽여 살해했지만, 일산화탄소 가스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밝혀지면서 각 안락사 센터 마다 가스실들이 배치되기 시작함.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장애인들은 사망 사인이 절묘하게 위장되었고, 이에 대해선 경찰과 공무원들까지 가담한 국가적 범죄였음.
3. 주요 가해자들
나치 친위대 의사 카를 브란트
나치 친위대 의사 빅토어 브렉
브란트의 부하였던 브렉은 T4 작전 실무집행을 담당하고 여기에는 장애인들을 '운송' 시켜 '제거'하는 것과 이 학살작전을 은폐시키는 것,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까지 담당함.
당시 브렉의 보고서
번역: 공익 재단 – 시설 관리
베를린 W 35, 티어가르텐슈트라세 4
전화: 22 35 56
긴급!!!
비밀
전달: 급행 우편
베를린 W 35, 1940년 11월 22일
수신: 총통 관저
국가지휘자 보울러 베를린 W 35, 1940년 11월 22일
수신: 총통 관저
국가지휘자 보울러
베를린 W 8
포스트슈트라세 4
존경하는 국가지휘자께,
여러 차례의 문의와 관련자 측의 재차 요청으로 인해, 유족(유가족)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믿을 만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하일 히틀러!
귀하의
(서명)
이 인간은 후에 아돌프 아이히만과 함께 일산화탄소 가스 밴으로 유대인 학살을 실시하는 아이디어도 냈고, 유대인 학살에 필요한 가스를 제공하는 실무도 담당함. 당연히 이 일 때문에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짐.
나치 경찰관 겸 친위대 장교 크리스티안 비르트
이 인간은 T4 작전의 최고 등급 감독관이었는데 같은 나치들 조차 이 인간을 "끔찍한" "야만적인" "짐승" "급강하폭격기"라 부르면서 혐오했다고 함. 왜냐하면 극도로 비인간적이고 학살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심을 했고 부하들에게 모질게 굴었기 때문임.
그는 이 작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라페네크에 안락사 센터 설립,
-브란덴부르크에서 일산화탄소 가스실로 장애인 학살하는 '첫 번째 실험'에 참여,
-오스트리아 하르타임 안락사 센터의 가스실 건설 감독
이 인간은 T4 작전이 종료된 뒤에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유대인 50만 명 이상이 살해당한 베우제츠 학살 수용소를 설립하고, 라인하르트 작전의 감독관이 되어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유대인 학살에 쓰이도록 함.
*사실 유대인 죽여대던 나치 장교 상당수가 T4 작전 출신이었음. 즉, T4 작전은 유대인 학살 작전의 프로토타입 격 작전이었던거임.
결국 1944년,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소탕 작전 당시 파르티잔의 납탄을 맞고 제거당함.
4. 학살 피해
1939년 9월부터 1945년 4월까지 피고인 카를 브란트, 블로메 , 브렉, 호벤은 불법적, 고의적, 고의적으로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는 통제위원회법 제10조 제2항에 정의된 바와 같습니다. 즉, 이들은 제3 제국의 소위 "안락사" 프로그램 실행에 관여하는 계획 및 사업의 주모자, 공범자, 명령자, 교사자, 동의한 참여자였으며, 이 계획 및 사업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피고인들은 이 과정에서 독일 민간인과 다른 국가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수십만 명의 인간을 살해했습니다. 이러한 살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 기소장 제2항 제9항에 명시되어 있으며, 본 기소장에 참조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 당시 기소문-
(1945년, 나치 패망 이후 발견된 피해자들의 무덤)
공식적으로 27~30만 명 이상의 독일 국적의 장애인, 기형아, 정신질환자들이 학살당함. 자국민 수십 만명을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죽여버린거임. 폴란드와 그 외 점령지에서 저지른 학살도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음.
티어가르텐슈트라세 4의 본부는 베를린 전투 당시 포화에 휩쓸려 파괴당했고, 그 자리에는 추모기념관이 설립되었음. 이 계기로 유럽에서 안락사가 매우 꺼려지게 되었으며, 생명 윤리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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