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은 창작의 숨결” 박민정 작가, 세종 스위트에서 찾은 사유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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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은 창작의 숨결” 박민정 작가, 세종 스위트에서 찾은 사유의 온도

경기연합신문 2025-10-07 11:53:00 신고

장편소설 『더 신라(The Shilla)』로 SF 서사의 경계를 확장해온 박민정 작가. 그녀는 최근 포시즌스 호텔 서울 세종 스위트에서 머무르며, 글을 쓰지 않는 시간 속에서 더 단단한 문장을 길어 올렸다. 다가오는 신작들과 함께, 창작의 리듬을 조율하는 방법에 대해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글을 쓴다는 일은 종종 '멈춰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작가 박민정은 이 역설적인 명제를 누구보다 성실히 받아들이는 창작자다. 『더 신라(The Shilla)』와 같은 서사 실험작에서부터 곧 출간 예정인 철학적 SF 미스터리 『편백나무 숲』, 프리퀄 작품 『더 컨버트(The Convert)』까지, 그녀의 문장에는 깊은 사유의 공백과 정제된 감각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쉼’이라는 창작의 또 다른 형태가 존재했다.

“요즘은 아무것도 쓰지 않고 머무는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져요. '쉼'이라는 건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다음 문장을 준비하는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박민정 작가는 최근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세종 스위트에서 짧은 창작 휴식을 보냈다. 서울 광화문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고요한 공간은 작가에게 단지 호화로운 숙박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곳은 일종의 현대적 수도원 같았어요. 외부의 풍경은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내부는 시간의 흐름에서 분리된 듯한 정적이 있었죠. 문장이 그 속도에 맞춰 다시 숨을 고르기 시작했어요.”

작가는 이 시간을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작의 리듬을 다시 조율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녀에게 ‘쉼'은 무언가를 멈추는 행위가 아니라, 언어가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 다시 짜이는 시간이다. “저는 그걸 ‘무의식의 편집자’라고 불러요. 글을 멈출 때 오히려 문장의 숨결이 진해지고, 내가 아닌 어떤 존재—시간, 기억, 혹은 과거의 목소리—가 천천히 떠오르거든요.”

이러한 사유는 곧 그녀의 신작들에도 깊이 스며든다. 올해 하반기 출간 예정인 『편백나무 숲』은 기억, 유전, 윤회를 테마로 한 SF 미스터리다. “기억이 유전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소설의 출발점이었어요. 과거 무녀들의 제의, 현대의 유전자 실험, 미래의 기억 복제 기술이 하나의 나선형 시간축에서 만나도록 설계했죠.” 박 작가는 이 작품을 ‘윤회의 언어로 쓰인 과학소설’이라 부르며, 신화와 과학이 교차하는 문체 실험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신작 『더 컨버트』는 전작 『더 히노키』의 남자 주인공을 다시 불러온 프리퀄이다. “이미 완성된 인물을 다시 쓰는 작업은 일종의 의식 같았어요. 동시에, 기억의 반전을 통해 현재의 독자 인식마저 바꿔보려 했죠. 『더 컨버트』는 인물이 변하는 이야기보다, 기억이 인물을 새로 쓰는 이야기입니다.”

박민정 작가는 장르 실험뿐 아니라 문체의 밀도와 ‘느림’의 미학을 고집한다. 디지털 시대의 속도감 속에서도 그녀는 느리게 쓰는 글쓰기를 ‘인간 언어의 마지막 호흡’이라 칭한다. “생각은 빠르게 증식하지만 감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요. 저는 느림을 통해 언어와 감정의 속도를 맞춥니다. 단어가 스스로 제 위치를 찾아가는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적인 창작의 진수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그녀의 사유는 공간에 대한 감각으로도 이어진다. 대표작 『더 신라』에서 배경이 된 경주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경주는 저에게 기억이 겹쳐 있는 땅이에요. 수천 년의 시간과 언어가 퇴적된 공간이죠.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현대의 경주는 미래를 설계하려는 회의의 공간이라면, 제 소설 속 경주는 세계가 스스로를 기억하는 장소예요. 그 대비 속에서 인간의 오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박민정 작가에게 공간은 텍스트를 일으키는 기폭제이며, 느림은 감정과 문장을 이어주는 리듬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찾은 조용한 스위트룸이 작가에게 새로운 문장을 가능케 한 것처럼, 그녀의 서사는 언제나 그 안팎의 경계를 유영하며 ‘기억의 언어’를 탐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느린 문장을 따라가며, 인간다움이 깃든 서사의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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