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재난, 신체의 연약함, 상실과 애도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희망과 재생과 웃음에 관한 책이기도 하며, 우정과 회복 탄력성, 사랑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17쪽>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얼마나 순식간에 모든 게 잘못될 수 있는지 일찌감치 배웠다. 제대로 예방하지 않아서 일어난 사건이 대단히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우리가 얻은 교훈이었다. <28쪽>
힐스버러 참사가 벌어지고 23년이 지난 뒤,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적절한 의료 지원이 제공되었다면 사망한 팬들 중 마흔한명은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31쪽>
아빠가 TV를 보면서 고함을 지르던 게 기억난다. “누구든 해결을 해야지.” 나는 그 말을 지시로 받아들였다. <34쪽>
살면서 나는 이런 재난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피로 쓰인 명령’이라고 부른다. 다수의 사망자가 나온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즉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면 어떤 형태로든 행동이 불가피해지며, 국가 차원에서 일련의 법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34쪽>
재난 생존자는 설령 신체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도 안전하다는 감각과 권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며, 정신건강이 망가진 나머지 재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만다. <35쪽>
대학 행정부에서는 사고가 전혀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학생 신문에 실린 보도에서는 남자가 심하게 취해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고, 나중에는 그가 브리스톨 학생이 아니라 웨스트오브잉글랜드대학(폴리테크닉에서 전환되었다) 학생이며 인디 록 애호가라는 점을 지적하며 조롱하는 기사를 싣기까지 했다. 내게는 그 모든 게 소름끼치게 익숙했다. <41쪽>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모린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내는 것에 감탄하며 비결을 물었다. 잠시 그녀의 얼굴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고 고요해졌다. “밤에 한단다.” 모린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잠을 잘 수 없거든.”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일어났고 거기서 어떠한 힘을 얻는다고 답하곤 했다. <49쪽>
고위 공무원 한 사람이 나와서 ‘중요한 건 현실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청중에게 말했다. “이제는 비행기가 건물로 돌진하는 테러 따위는 대비하지 맙시다. ‘현실적’ 차원에서 계획을 세우자는 뜻이에요.” 그가 웅변을 토했다. 3년 뒤, 9·11 테러 상황을 다룬 미 국가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믿음을 ‘상상력의 실패’라고 명명했다. <54쪽>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둘다 손상되었을 경우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한번은 잘린 손을 들고 앞뒤를 살펴보며 어느 쪽 손인지 알아내려 애쓰다가 동료에게 걸렸다. 나는 운동 기능 장애 때문에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대체로 잘 숨겨왔다. 하지만 이 현장에서는 내 장애가 훤히 드러났다. <82쪽>
“씨발, 씨발, 씨발.” 그는 금속 족집게로 테리의 시신에서 찾아낸 총알을 꺼내서 강낭콩 모양 금속 접시에 올려놓았다. 검시대 근처 사람들은 그 순간 직감했다. 우리가 보도에서 들은 내용과 부검으로 밝혀진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테리의 몸에서 나온 총알들은 언론 보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89쪽>
인생은 대단히 귀중하고, 언젠가는 끝나며, 무척 연약하다. 이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188쪽>
나는 만장일치나 집단 사고를 원하지 않는다. 엉망진창이고 진실하며 복잡한 인간의 반응을 원한다. 나는 비상계획관이지만, 언제나 계획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253쪽>
『먼지가 가라앉은 뒤』
루시 이스트호프 지음 | 박다솜 옮김 | 창비 펴냄 | 364쪽 | 22,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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