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된 한 판결은 명의신탁이 얼마나 씁쓸한 결말을 낳을 수 있는지, 그리고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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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관리한 아파트, 그러나 내 것이 아니었다
사건의 시작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누나인 A씨는 남동생 D씨의 이름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했다. 분양대금과 프리미엄은 물론, 이후 아파트 완공까지의 모든 비용을 A씨가 부담했다. 1996년 아파트가 완공되자 남동생 D씨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루어졌고, A씨는 그 무렵부터 임차인을 통해, 혹은 직접 거주하며 30년 가까이 아파트를 점유하고 실질적으로 관리해왔다. 등기권리증도 A씨가 보관했고 재산세 등 각종 세금도 A씨가 납부했다. 모든 것이 A씨의 아파트처럼 보였다.
문제는 2022년 남동생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남동생의 배우자인 C씨가 법적 상속인으로서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받은 것이다. 졸지에 평생 일군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A씨는 동생의 아내 C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 돈을 낸 사람이 주인이니 아파트는 내 것이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1심부터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판단은 일관되게 A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법원의 판단을 세 가지 핵심 쟁점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 이 사건 명의신탁은 ‘계약명의신탁’에 해당하며, 수탁자 명의의 등기는 유효하다.
A씨와 남동생의 관계는 명의신탁에 해당한다. 특히 이 사건은 남동생이 분양회사와 직접 수분양자 지위 승계 계약을 체결한 ‘계약명의신탁’에 해당한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에 따르면, 명의신탁 약정은 무효다. 하지만 매도인(이 사건에서는 분양회사)이 명의신탁 사실을 몰랐을 경우, 명의수탁자(남동생) 앞으로 이루어진 등기는 유효한 것으로 본다. 분양회사는 A씨와 남동생 사이의 내부 사정을 알지 못했으므로, 남동생 명의의 소유권 등기는 법적으로 유효하게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법률상 아파트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남동생에게 있었고, 이를 상속받은 C씨의 소유권 역시 유효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둘째, 20년 이상 점유했어도 ‘자주점유’가 아니므로 점유취득시효가 인정되지 않는다.
A씨는 예비적으로 “20년 이상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했으므로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다. 20년 이상 내 집처럼 살았으니 이제는 소유권을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점유취득시효의 핵심 요건은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 하는 점유’, 즉 ‘자주점유’인데, A씨의 점유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계약명의신탁의 신탁자는 애초에 자신에게 소유권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타인(수탁자) 소유의 부동산을 점유한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유의 의사로 점유했다는 추정은 깨진다고 판시했다. 즉, A씨는 남동생 명의의 집이라는 것을 알면서 점유했기 때문에 ‘자주점유’가 아닌 ‘타주점유’에 해당하여 점유취득시효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A씨는 항소심에서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동산실명법 시행 이전에 체결된 명의신탁이므로, 설령 소유권을 가져올 수 없더라도 남동생이 법률상 원인 없이 얻은 이익(아파트 자체)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리 있는 주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소멸시효’의 벽에 부딪혔다.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 법원은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되고 유예기간이 지난 1996년경부터 이미 소멸시효가 진행되었다고 보았다. A씨가 소를 제기한 시점은 그로부터 20년 이상 훌쩍 지난 후였으므로, 권리 위에 잠자고 있던 A씨의 청구권은 이미 소멸했다는 것이다. A씨가 계속 아파트를 점유하고 사용해왔다는 사실조차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지는 못했다.
부동산실명법은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강력한 법률이다. 이를 위반한 명의신탁 약정은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당장의 편의를 위해 가족의 이름을 빌리는 순간, 미래에 더 큰 법적 분쟁과 재산 상실의 위험을 떠안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굳건한 신뢰라도 내 재산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법이 인정하는 유일한 보호막은 바로 ‘내 이름으로 된 등기’이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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