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견 철강회사 CEO(최고경영자)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 정부의 철강 관세 부과로 걱정이 많았다. 미국은 수입산 철강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철강은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 비즈니스인데, 50%의 관세 부담을 미국 내 최종 수요자에게 전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이 CEO는 이런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지을 경우 설비 투자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는 데 50여 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 도저히 대규모 투자를 하기 힘든 여건이다.
또 그는 대규모 투자도 어렵지만 미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비용(operation cost)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도 부담이지만 공장에서 일할 양질의 노동자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있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한국 노동자 구금·체포 사태는 미국 경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공장 건설을 위한 노동자를 미국에서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는 미국이 원천기술을 개발하면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만든 표준에 기반해 생산하는 분업구조를 발전시켜왔다. 애플이 대표적인 예다. 애플은 아이디어를 만들고 마케팅 전략을 짜는 회사이지 생산하지는 않는다. 애플의 아이폰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동아시아의 여러 부품 업체로부터 납품받아 대만의 폭스콘에서 조립한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교육은 창의적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리가 있지만 이런 교육 시스템은 글로벌 분업구조의 산물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아이디어 창출이 아니라 정해진 공정대로 잘 만들어내는 인력이 필요했고, 교육도 이런 인재들을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이 이런 인재들을 잘 배출할 수 있을까?
표준화된 생산을 위해서는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천재들이 아니라 균질적인 공교육에서 배출하는 대규모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여러 차례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찬양하는 발언을 내놨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배출하는 것은 미국 교육의 경쟁력이지만 동아시아와 같이 생산인재 육성까지 잘한다는 보장은 없었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인 JD 벤츠가 쓴 자전적 에세이 '힐빌리의 노래'는 황폐해진 미국 공교육과 노동윤리의 타락을 잘 보여준다. 중등 교육의 현장에서는 마약이 횡행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잣은 결근과 지각이 만연해 있다. 미국이 과연 양질의 노동자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관세라는 채찍이 추동하는 공급망 재편은 미국 입장에서도 위험한 도박이다. 따라서 달러 가치의 인위적 절하, 교역 상대국들의 적극적 내수 부양을 통한 미국산 상품 수입 확대 요구 등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큰 문제가 됐던 시기는 이번을 포함해 모두 4차례 있었다. 1970년대 닉슨 행정부는 10%의 관세를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부과한 데 이어, 달러의 금 태환을 전격적으로 중단하면서 달러 가치의 인위적 약세를 유도했다. 또 해외 주둔 미군의 축소를 매개로 한국과 서독 등 동맹국들을 압박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때는 반덤핑을 명분으로 일부 품목에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는 슈퍼 301조를 발동해 교역국을 압박했다. 이어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컸던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의 인위적 평가절상(달러 절하)을 강요했고, 한국과 대만 등 세컨티어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들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87년의 루브르 합의는 동맹국들의 내수 부양을 통해 미국산 상품 수입 확대를 도모한 국제적 공조였다.
2000년대 부시 행정부 때는 관세 부과나 인위적 통화가치 조정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가장 컸던 중국의 위안화 절상과 내수 부양을 요구했다.
무역전쟁 1라운드는 끝났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전반적인 방향은 약달러와 수입 확대 요구 등이 될 것이다. 주식시장은 달러 약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달러자산으로서 수혜를 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가 받는 부담은 커질 것이다. 달러 가치가 약해지는 국면에서 나타나는 비달러자산 가격 상승은 실물경제와 괴리가 발생하는 버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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