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찾은 날”…24년 만에 풀려난 ‘친부살해 무기수’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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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은 날”…24년 만에 풀려난 ‘친부살해 무기수’ [그해 오늘]

이데일리 2025-10-03 00:00:02 신고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2018년 10월 3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하던 무기수 김신혜씨에 대한 재심 개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해 법원이 재심 결정을 내린 것은 김씨 사건이 처음이었다. 18년째 복역하던 김씨가 다시 법원 판단을 받게 되기까지는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신혜 씨가 지난 1월 6일 오후 전남 장흥군 용산면 장흥교도소에서 석방된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모부 경찰 신고로 긴급체포…재판서 ‘자백 진술’ 번복

김씨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2000년 3월 7일이었다. 이날 오전 5시 50분께 김씨의 아버지 A(사망 당시 52세)씨는 전남 완도의 한 버스정류장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집에서부터 약 7km 거리에 있는 곳에 쓰러져 있었다. 현장 주변에는 차량 방향 지시등 파편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경찰은 뺑소니 사고 가능성을 고려해 수사에 착수했지만 김씨의 고모부가 “조카가 아버지를 수면제 먹여 살해했다고 말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며 김씨가 긴급 체포됐다.

23세였던 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수면제를 양주에 타 아버지에게 간에 좋은 약이라고 말하고 먹였고 A씨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해 죽였다”고 했다. 수사 당국은 김씨가 A씨 명의로 8개의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금을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대신 감옥에 갈 생각으로 거짓 자백했다”며 “선처받으려 거짓말했을 뿐 아버지의 성추행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뒤늦게라도 무죄를 주장했지만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2001년 3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교도소에 수감된 김씨는 노역을 거부하며 거듭 무죄를 호소했고 각종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그의 사연이 다뤄지며 사건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고상만 인권 운동가의 공론화와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강압 수사 의혹 제기 등 과정을 거쳐 김씨 사건은 2015년 재심 결정을 받았다. 대한변호사협회 또한 사건을 재검토한 결과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확인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검찰이 계속 항고하며 2018년 10월이 돼서야 재심 개시가 확정됐다. 한국 사법 역사상 복역 중인 무기수에 재심 결정이 내려진 첫 사례였다.

친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신혜씨가 공개한 자신의 옥중 메모. (사진=박준영 변호사)


◇검찰 무기징역 구형…재심 무죄 선고

재심에서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은 “‘아버지가 성적 학대’를 했다는 이야기를 여동생 등 가족으로부터 김씨는 들었다”며 “이 사실에 격분한 김씨에게 아버지를 살해할 분명한 동기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버지 명의로 보험 7개에 가입했고 수령 가능한 보험금은 당시 3억 5000만원, 교통사고 사망 시 9억원 상당이었다”며 “술에 수면유도제를 탔다는 범인만 알 수 있는 범행 방법을 김 씨는 아버지의 부검 전 알고 있었는데 이를 종합하면 살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김씨 측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수면제 가루를 양주에 탔다고 검찰이 주장했으나 부검 결과 다량으로 약물을 복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는 살해했다는 직접 증거가 될 수 없고 간접 증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부터 자신과 동생이 성추행당했다고 한 주장은 선처를 구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며 “당시 가족의 잘못된 조언으로 아버지를 성폭행범으로 만들었는데 자신의 명예도 중요하나 아버지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명의 보험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나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2000년 1월 대부분 가입했다”며 “보험 설계사로 일한 김씨가 이런 경우 보험금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강조했다.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 재판부는 과거 김씨의 자백 진술과 각종 증거의 증거 능력에 대해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남동생이 범인으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김씨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경찰의 압수 증거는 영장도 없이 적법 절차와 영장주의를 지키지 않고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재판부는 A씨가 사망 2시간 전 수면제 30알을 복용했는데도 위장에 관련 성분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존속살해 증거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김씨의 살인 동기에 대해서도 A씨가 김씨와 여동생을 추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는 김씨가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 수령이 어려운 사실을 모를 리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재판부는 “김씨가 동생들에게 허위 진술을 교사하고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 점 등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러한 사정만으로 유죄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무죄 판결 직후 시민단체 ‘김신혜 재심 청원 시민연합’은 입장문을 내고 “진실을 찾아 매우 뜻깊은 날”이라며 “당시 수사했던 사법기관은 김씨와 가족에게 진실한 사과와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죄 선고 이후 출소한 김씨는 “잘못된 부분이 있을 때 바로 잡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사법 체계·정치 체제에서는 이렇게 힘든 것인가에 대해 안에 있으면서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못 지켜드려 죄송하다”며 “부끄럽지 않게 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딸로 살았던 그 세월이 헛되지 않게끔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광주지검 해남지청이 재심 판결이 불복해 항소하며 김씨는 다시 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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