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지영 기자 | 리튬이온배터리(LIB)가 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원인으로 확인되자 보험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LIB는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IT 기기 등 산업 전반에 활용되지만 높은 에너지 밀도에 따른 폭발 위험으로 보험사들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시험대에 올랐다.
1일 한국보험연구원(KIRI)에 따르면 지난해 LIB 수요는 1.3TWh로 2023년 대비 31.9% 증가했다. 2035년에는 5.6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IT 기기용 수요는 115GWh, 전기자동차용은 898GWh, ESS용은 307GWh로 예상된다.
문제는 LIB가 내부 전해액을 포함하고 있어 특정 조건에서 열폭주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이다. 열폭주는 LIB 내부에서 발생한 발열이 연쇄적 화학반응을 유도하고 이로 인해 온도와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폭발과 화재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또한 LIB에는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등 중금속과 유해 유기화합물이 포함돼 매립 시 토양 오염과 생태계·인체 건강에 대한 악영향이 우려된다. 고온 소각 처리 시에도 유독가스가 방출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지난해 LIB 관련 사고가 총 3880건으로 2023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제너럴 모터스(GM)는 2022년 12월 자사 전기차 모델인 쉐보레 볼트 EV에 탑재된 LIB에서 화재 위험이 확인되자 차량 14만대를 대상으로 대규모 리콜을 실시했다.
같은해 3월 일본 가고시마현의 태양광 발전소 BESS 시설에서는 LIB 내부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 설비동 한 채가 완전히 소실되고 약 5만개의 리튬이온 셀이 손실됐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를 비롯해 ESS 화재 사고가 빈번하다. 국내 ESS 화재는 2018~2022년 사이 34건 발생했으며 보험금 지급 규모는 수백억원대에 달했다. 전기차 분야에서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대규모 리콜과 화재 사례가 이어지며 손해보험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LIB는 구조적 특성상 온도와 충격 변화에 민감해 사고 예측이 어렵고 공급망이 복잡해 책임 소재 규명조차 쉽지 않은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사고 원인이 배터리 제조·관리·보관 중 어느 단계에서 비롯됐는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며 "이에 보험사는 인수·면책 기준을 정립하지 못하고 결국 사고 발생 시 대규모 손실을 떠안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글로벌 손해보험업계는 LIB 리스크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재물보험사 FM 글로벌은 LIB 제조·보관과 ESS 관련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시설 설계, 운영, 화재 방지, 인적 대응 등 전반을 아우르는 안전·기술 지침을 발표했다. 또한 노후 배터리와 재사용 셀 취급 기준까지 상세히 제시했다.
글로벌 상장 손보사 처브는 수출입 기업과 물류 등 LIB 공급망 전반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LIB 전용 보험 컨소시엄을 설립했다. 창고업자 배상책임보험, 적하보험 등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처브 외 11개 로이즈 보험사가 참여해 최대 5000만달러 규모의 인수 능력을 갖췄다.
독일 재보험사 뮌헨리(Munich Re)는 태양광 발전 등 에너지 분야 전문 자회사 그린테크솔루션스(Green Tech Solutions)를 통해 BESS용 보증보험을 제공한다.
업계에서는 국내 보험산업이 LIB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대형 사고 발생 시 보험사의 지급 여력과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LIB 리스크 관리의 핵심 과제로 ▲데이터 기반 리스크 분석 ▲사고 유형별 인수 기준 마련 ▲기술적 리스크 분류체계 구축을 꼽았다.
보험사 차원에서는 LIB 사고 유형별 인수 기준과 면책 조항의 구체화, 전용 담보 상품 개발, 리스크 프라이싱(위험 기반 가격 산정)의 정교화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배터리 특유의 열폭주와 폭발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사고 발생 시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사고 유형별 기준과 면책 조항을 세분화하면 사고 발생 시 보다 신속하고 명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LIB 사고에 특화된 전용 담보 상품 개발은 고객에게 맞춤형 보장을 제공하고 보험사 입장에선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배터리의 폭발 가능성과 열폭주 등 위험 요소를 정밀히 평가해 보험료에 반영하는 리스크 프라이싱 정교화가 필수 과제라고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손해율 관리와 재무 건전성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해외 사례처럼 대형 사고에 대비한 전용 재보험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업계 역시 글로벌 손보사들이 ESS와 전기차 배터리 리스크를 공동으로 분산하기 위해 구성한 전용 컨소시엄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 차원에서는 LIB 안전 인증 강화와 공급망 단계별 안전 관리 의무 제도화, 사고 데이터 공유 시스템 구축 등 제도적·기술적 대응이 요구된다.
업계 관계자는 "리튬이온배터리 리스크는 단순히 보험사의 문제를 넘어 국가 산업 전반의 안정성과 직결된다"며 "제조사·보험사·정부가 함께 대응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면, 향후 초대형 사고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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