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하늘에서 별이 지워지고 있는 걸
내가 눈여겨보지 않으면
먼제 속에서 내 영혼이 지워지고 있는 걸
별들도 눈여겨보지 않으리라
-『별』 전문
내가 해야 할 일을 경전은 거룩하게 기록했으나
이승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비린내 나는 세상을 끌어안고 버티는 일
버티다 녹아 없어지는 일
오늘도 몸은 녹아내려
옛 모습 지워지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은 저게 무슨 소금이야 한다
-『소문』
성취 앞에서 저렇게 절제할 수 있을까
시련 앞에서 저렇게 겸허할 수 있을까
나무 가득 꽃 피워놓고
교만하지 않는 백매화처럼
단 한잎도 붙잡지 못하고 날려 보내면서
비통해하지 않는 산벚나무처럼
-『꽃나무』 전문
진정으로 아름다운 산은
겨울에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생의 겨울에도 아름답다
-『겨울 산』 전문
초저녁별은 알고 있었을까
꿋꿋하게 산다고 외롭지 않은 게 아님을
근원적인 질문 끝에는
늘 쓸쓸한 시간이 오는 것임을
-『초저녁별』 전문
아직도 할 일이 있다는 것
어려울 때마다 상의할 사람 있다는 것
아직도 마음이 뜨겁다는 것
간절할 때마다 달려갈 곳 있다는 것
아직도 별을 우러러본다는 것
외로울 때마다 바라볼 곳 있다는 것
-『고마운 일2』 전문
높은 산에서는 연꽃이 피지 않는다
연꽃은 낮은 곳에서 핀다
우리 너무 높은 곳에 있으면서
속으로는 연꽃 같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흙물 뛸까봐 조심조심 걸으면서
상식의 영역으로 많이 넘어와 있으면서
썩은 냄새도 물벌레도 불편해하면서
향기만 취하려는 건 아닐까
-『연꽃』 전문
■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도종환 지음 | 창비 펴냄 | 156쪽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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