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5분도 쉴 틈 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한 저녁, 창문을 다 열고 서늘한 저녁바람 맞으며 영화 <가을 이야기> 를 봤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밤하늘과 영화는 너무 잘 어울렸다. 남프랑스의 가을은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시원하고, 조금은 햇살 따끈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키작은 포도를 수확하는 농장과, 그늘이 아름다운 소박한 주택이 배경이다. 덕분에 다소의 열기와 약간의 한기와 만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고양이와 함께 누워서 와인 몇모금하며 영화보는 가을 저녁의 호사다. 가을>
줄거리라고 하자면 자식을 다 키워보낸 마갈리와 그 외로움을 도우려는 친구들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프랑스 영화에서 언제나 의문이 드는 것은 늘 사랑을 찾아헤맨다는 것, 특히 나이와 아무 상관 없이. 물론 마갈리는 40대 중반이므로 반론의 여지는 없지만, 일찌감치 아이를 낳아 키우느라 미숙한 부모 노릇을 하고, 비로소 어른이 되어 도착한 시간이다. 그러나 자존감은 떨어져 친구들에게 찡찡거리는 캐릭터다. 이런 마갈리가 남자를 만나게 될지,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될지 결정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묘한 긴장감이 이 영화의 재미이기도 하다.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친구 이사벨과 아들의 여자친구인 로진은 각자의 방식으로 남자를 소개한다. 본인들의 욕망 안에서 일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영화 밖에서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어쩌면 영화 안에서는 살다보면 튀어 나오는 삶의 스킬들이기도 하겠다. 에릭 로메로가 표현하는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은, 부도덕과 미흡함을 오가는 평범한 마음들을 밉지 않게 포착한다. 절대선도 악도 아닌.
덕분에 그들의 단면을 통해 나를 바라보게 하는, 삶의 모순과 이기적인 마음, 때로는 너그러운 관계들, 때로는 이상한 사랑과 헌신들까지. 모두 들여다보게 한다. 결국 사랑의 탐구가 목표로 보여진다. 에릭 로메로의 다른 작품에서처럼 마갈리와 이사벨, 두 친구 모두 책읽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이사벨은 서점을 운영하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이로써 계절편 4개를 모두 보았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감독은 가을 이야기를 완결로 본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다 본 셈이다. 자꾸 홍상수의 영화가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다. 미화되고 기획된 대화가 아닌, 실제로 우리가 하는 비연속적이고 우연한 대화들, 끈질기게 묻고 대답하는 실제 대화 장면들이 좋았다. 대화를 통해 극중 인물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관객은 그 관계를 통해 나의 삶을 문득문득 끌어오게 되지 않는가. 결론 없는 결말을 잊어버리면서. 덕분에 영화 속 모두가 사랑스런 존재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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