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MBC ‘달까지 가자’는 지난 19일 첫 방송부터 유쾌함 뒤에 숨은 날카로운 현실 인식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다해(이선빈), 강은상(라미란), 김지송(조아람), 세 여성의 고군분투는 단순한 코믹 드라마의 틀을 넘어, 오늘날의 노동 현실과 여성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된다.
'무난이들’이라는 이름 뒤에는 결코 무난하지 않은 삶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규직 전환을 위한 면접, 평가 등급, 비공채 차별, 환승 이별 등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시청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오히려 너무 익숙한 현실을 투영한다.
드라마는 첫 장면부터 상징적인 전개로 출발한다. 다해가 정규직 전환 면접 도중 벌에 쏘여 기절하고, 정신을 잃은 사이 마주한 ‘미래의 나’는 “넌 앞으로도 계속 쭈구리처럼 살 거야”라고 말한다. 이는 판타지적 장치라기보다,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겪는 무력감과 자기혐오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꿈꾸는 삶과 주어진 현실 사이의 괴리는, 곧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가 마주한 냉정한 구조적 불평등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다해는 퉁퉁 부은 얼굴로 면접을 끝까지 마치고,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다. 그러나 3년 뒤 그녀의 삶은 ‘쭈구리 예언’처럼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제자리다.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붙은 ‘똥글씨’라는 별명, 팀장의 지시로 14층을 계단으로 오르는 무의미한 고생,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무난’ 등급의 사내 평가는 그녀의 노력이 시스템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이별 통보를 받는 순간도 인상 깊다. “너나 나나 물고 태어난 게 흙수저야. 결혼하면 더 힘들어질 텐데, 너 그걸 감당할 수 있어? 비공채잖아”라는 남자친구의 대사는, 개인의 감정마저도 자본과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이별은 감정의 소멸이 아니라 ‘조건’의 실패이며, 이 장면은 결국 사랑조차 경제적 스펙으로 환산되는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이후 친구들과 함께 벌이는 장어 투척 복수극은 과장된 유머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억눌린 분노의 집체적 발산이라는 점에서 해방감마저 안긴다. 다해가 외치는 “너만 내가 아쉬운 줄 알았어? 나도 너 성에 안 찼어!”라는 말은, 누군가의 평가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작은 반격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또 다른 강점은 세 여성의 우정이 감정 공유를 넘어서, 서로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생존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불안과 무력감을 나누는 방식은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고, 오히려 거칠고 유쾌하며 생생하다. 팍팍한 삶이지만 함께라면 버틸 수 있다는 메시지는 요즘같이 관계가 단절된 시대에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우리 코인하자”는 은상의 제안은 단순한 ‘한탕’의 의미를 넘어서, 절망의 순환 고리를 끊고자 하는 시도이자, 새로운 세계에 대한 투신을 암시한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도박’이 유일한 희망처럼 여겨지는 오늘날 청년들의 감정선과 맞닿아 있다.
극중 세 배우는 뛰어난 시너지를 보여준다. 이선빈은 능청스럽고도 짠내 나는 현실 연기를 능숙하게 해내며 극의 중심을 잡았고, 라미란은 특유의 생활 연기와 카리스마로 무게감을 실었다. 조아람은 말수 적고 조용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치열하게 버티는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워맨스’는 여타 드라마에서 자주 소비되는 여성 연대 서사와 달리, 낭만화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려지며 진정성을 더한다. 김영대가 연기하는 ‘함박사’ 역시 극 후반 등장부터 미묘한 서사를 더하며, 다해와의 인연이 단순한 로맨스로 흘러가지 않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특히 3년 전 면접장에서 이미 마주쳤던 인연이라는 반전은,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통해 인물 간 관계에 깊이를 부여한다.
‘달까지 가자’는 오피스 코미디도,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다. 드라마는 경쟁과 배제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평가받고 낙인찍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만의 존엄과 관계를 지켜내기 위한 작고도 단단한 저항이다. 코미디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무겁고 복잡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연출은 신선하고, 무엇보다 과장되거나 계몽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첫 회 방송 직후 “현실 이야기라 너무 와닿는다”, “여자들 우정에 울컥했다”, “가볍게 웃다가 묵직해진다”는 시청자 반응은, 이 드라마가 오락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달까지 가자’는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끝없이 무난해지길 강요받는 이들이, 무난함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이야기다. 첫 회만으로도 그 서사의 가능성과 진정성이 충분히 증명되었고, 앞으로 이들이 어떤 선택과 반전을 보여줄지 기대가 모인다. ‘코미디’가 반드시 가벼워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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