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예술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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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칼럼] 예술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화매거진 2025-09-16 12:22:41 신고

▲ 강산, 자화상, 2025
▲ 강산, 자화상, 2025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선배를 알게 되었다. 그 선배는 한 직장에서 무려 3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정년을 맞이해 퇴직한 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약 1년 뒤, 우연히 그를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한 작가의 작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그는 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예술 관련 일을 못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내게 그 만남은 다소 의외였다. 마치 평생 한복만 입던 사람이 갑자기 찢어진 청바지 전문가가 되어 찢어진 청바지만 파는 가게를 열었다고 말하는 듯한 낯섦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우리의 대화는 제법 즐겁게 흘러갔다. 그가 소개하는 작가의 작품은 그림뿐 아니라 사진을 오려 붙인 콜라주도 있었고, 설치미술에 가까운 형태도 있었다. 사용된 재료는 대체로 고가였으며, 작품 제작에는 상당히 전문적인 장비가 필요해 보였다. 선배는 그 작가가 어떤 전공을 했는지, 몇 년간 유럽 유학을 다녀왔는지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찬미했다. 그가 그 작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런 모습은 오히려 보기 좋았다.

나는 그때까지 약 7~8년간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지만, 선배에게 내 작업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궁금해하지 않았으니 굳이 보여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이런 말을 꺼냈다.

“화가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야. 하지만 작가는 작품 속에 철학을 담는 사람이야. ‘내 작가’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야. 진짜 ‘작가’지. 너는 그냥 화가일 뿐, 너는 작가는 아니야.”

그 말은 가볍게 툭 던진 듯했지만, 나는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내 작품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이제 겨우 작품 판매를 시작한 지 1년 남짓 된 사람이, 그토록 단정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어딘가 허술하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한다. 작가든 화가든 무엇이라 명명하든 모든 창작자는 잘 그리고 싶어 하며 자기만의 철학을 담고자 애쓴다. 그 과정은 마치 군대 제대 후 누구나 숱하게 떠들어대는 군 생활의 무용담처럼 수많은 고난과 연습 등 각고의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선배가 존경하는 그 작가 역시 그런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거나 고가의 재료와 장비를 쓰지 않는 예술가의 작업이 ‘철학이 담기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술사 속에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 수없이 많다. 교육을 받을 수조차 없었던 이들 중에도 오늘날 가장 높이 평가받는 이름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작품이 보잘것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술의 가치는 특정 학력이나 이력, 혹은 가격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고독한 방 한편에서, 때로는 허름한 화실에서 태어난 한 점의 그림이 세상의 시선을 바꾸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작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평가 절하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존경하는 예술가를 높이 평가하는 마음은 아름답지만, 그 존경심이 다른 예술가를 무시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의 세계는 결코 한 사람, 한 흐름, 한 관점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모든 예술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각자의 삶과 철학을 작품 속에 녹여낸다. 그 다양성과 치열함이 모여 예술 생태계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렇기에 갤러리 운영자와 평론가,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한 가지 잣대로만 예술을 재단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존경은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시선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작품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예술은 더욱 힘을 얻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화가’이든 ‘작가’이든, 누군가의 삶과 철학이 작품 속에서 진실하게 빛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진실성에 공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술 앞에 겸허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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