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국내 화장품 업계가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애경산업의 '주인 교체'부터 LG생활건강의 음료사업 구조조정,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시장 확대 전략까지, '화장품 빅3'의 전방위 사업개편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때 'K뷰티'를 대표하던 이들 대형 기업은 팬데믹 이후 시장 지형이 급변하자 생존 전략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15일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수출구조에서 벗어나 다변화를 시도하고, 인디 브랜드에 밀렸던 국내 시장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들이 본격화되며, 단순한 실적 개선을 넘어 새로운 성장축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변화는 애경산업에서 일어났다. 70년 기업 애경그룹의 모태인 애경산업이 최근 태광그룹에 매각되며, 화장품업계는 물론 유통·생활용품 업계 전체에 파장이 일고 있다.
애경산업은 '에이지 투웨니스(AGE 20's)', '루나', '포인트' 등 다수의 브랜드를 보유한 중견 화장품 기업으로, 생활용품까지 포함한 연매출은 5,000억원대에 이른다. 지난해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화장품 부문(291억원)이 생활용품(183억원)을 앞질렀다.
화장품 사업의 수익성이 입증되자 태광그룹은 과감히 인수에 나섰다. 특히 태광은 지난 7월 정관을 변경해 '화장품 제조 및 판매'를 사업목적에 새로 포함시키며, 그룹 차원의 진출을 공식화했다. 패션·화섬에 집중돼 있던 태광이 처음으로 화장품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업계는 태광의 대규모 투자 여력과 애경산업의 탄탄한 생산 인프라가 시너지를 낼 경우, K뷰티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애경산업의 중국 의존도(전체 수출의 약 70%)를 줄이고 동남아, 북미, 중동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애경은 최근 들어 베트남, 말레이시아, UAE 등으로 유통 채널을 확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경산업이 보수적인 애경그룹에서 벗어나면서 오히려 유연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수 있다"며 "태광이 '제2의 LG생활건강'을 꿈꾸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LG생활건강은 한동안 주춤했던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방위적인 사업재편에 돌입했다. 특히 비주력 부문으로 분류되던 음료사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해태htb(구 해태음료) 매각 검토가 대표적이다. LG생건의 지난해 음료부문 매출은 1조8,24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성장성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체돼 있다는 분석이다.
삼정KPMG를 자문사로 선정해 현재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LG생건이 음료사업 전체를 매각하지는 않더라도, 선택과 집중 전략 차원에서 재편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LG생활건강은 화장품 외에도 '뷰티 디바이스'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6월, LG전자의 미용기기 브랜드 'LG 프라엘'을 인수하며 이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여기에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고 유효성분을 침투시키는 '비침습 음압 패치'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벤처 '미메틱스'와도 협업을 시작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앞으로도 미용기기, 바이오코스메틱 등 신사업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라며 "내년 초에는 '프라엘' 기반의 신제품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미 수년 전부터 글로벌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구권 매출 비중이 높은 코스알엑스(COSRX)를 전격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 브랜드는 미국과 유럽에서 Z세대를 중심으로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현재 아모레퍼시픽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발생한다. 아모레는 오는 2035년까지 글로벌 매출 비중을 70%로 확대하겠다는 중장기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펜타곤 5대 전략시장'으로 불리는 한국, 북미, 유럽, 인도·중동, 일본·APAC(아시아·태평양)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집중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미국 트렌드가 빠르게 반영되는 영국을 거점 삼아,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국으로 확장 중이다. 인도에서는 '설화수'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중동에서는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실험하며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중동과 인도 시장은 향후 10년을 좌우할 핵심 전략지로 보고 있다"며 "현지 소비자에 맞춘 맞춤형 브랜드와 기술력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대적인 개편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신뢰와 브랜드 파워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반등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때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던 K뷰티는 최근 몇 년간 인디 브랜드, 일본 브랜드, 미국 드럭스토어 브랜드 등에 밀리며 위상을 크게 잃었다.
실제로 국내 주요 화장품 기업의 시가총액은 2018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든 곳도 있다. 대규모 M&A나 신규 사업 진출이 '숫자' 이상의 성과를 내려면, 무엇보다도 브랜드 가치 회복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중국에 올인하던 전략이 지금은 오히려 리스크가 된 것처럼, 이번 재편 역시 시장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느냐가 핵심"이라며 "기술력과 마케팅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K뷰티의 제2 전성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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