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글 말고 그냥 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잘난 척하는 글 말고 하루를 낭비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깨닫는 글 말고 그저 담담하기만 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의미 따위 없는 글. 그냥 내가 이렇게 산다고 적는 글. _「이어달리기」
엄마의 천 가방엔 도시락과 노트가 들어 있었다. 엄마는 다시 청소 노동자가 되었으나, 퇴근 전 문헌정보실에 잠깐 들러서 책을 한 장씩 읽고 노트에 짤막한 글을 쓴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살았다. _「이어달리기」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저씨, 차라리 이모 옆에 가서 춤을 추세요. 이모와 춤을 추면 모든 걸 잊고 몸만 흔들게 돼요. 아저씨는 어떤 춤을 추나요. 아저씨가 몸을 흔들 때 세상도 같이 움직인다는 거 아세요, 모르세요. 나는 열일곱 살에 이미 알았는데, 그걸 알아도 인생이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춤을 추세요. 그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_「춤은 영원하다」
부드럽던 염안녀의 동작이 점점 과격해졌다. 장독에 한쪽 다리를 척 올리고, 상체를 앞으로 푹 숙였다가 뒤로 휙 젖혔다. 장독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토해내는 것처럼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_「춤은 영원하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할머니의 춤을 떠올리며 할머니를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언어가 개입되지 않은 움직임. 마음 가는 대로 팔다리와 몸뚱이를 흔들어보는 일. 어쩌면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그 시대에 할머니의 말이 어떤 무게를 가졌을지 짐작해보면, 말은 정말로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_「춤은 영원하다」
그 친구랑 아직도 연락해?
안 하지.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긴 해.
찾아보지.
싫어. 그냥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게 좋아.
그게 왜 좋은데?
이모는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대답했다.
춤을 잘 추게 되니까. _「춤은 영원하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자들. 쓰러진 묘비 주변을 맴돌며 춤을 추는 불온한 여자들. 원시적인 여자들. 홍시처럼 다디단 과육이 가득 차올라 터질 것 같은, 어쩌면 이미 터져버린 여자들. 과육만 먹고 씨는 툭 뱉어내며 자란 삐딱한 나와 그런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준 여자들. _「춤은 영원하다」
천변 공원에 모여 에어로빅을 하는 아주머니들 사이에 섞여 열심히 춤을 췄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청산별곡>을 수시로 읊어댔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최청자가 만든 한국 무용 작품 <살어리랏다>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막춤을 추기도 했다. _「AKA 신숙자」
나는 결혼 이주 여성이라는 단어가 싫습니다. 차라리 나를 개척자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입니다. 한국은 내가 어머니가 되길 바라지만 나는 그저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_「운동장 바라보기」
『그래도 춤을 추세요』
이서수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324쪽 | 17,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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